증자-맹자-주자와 달랐던 공자

11편 선진(先進) 제10장

by 펭소아

안연이 죽었다. 제자들이 그의 장사를 후하게 장사 지내려고 했다. 공자가 말했다. “옳지 않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다.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하였는데, 나는 그를 자식처럼 대하지 못하고 말았구나. 내 탓이 아니라 저 제자들 탓이로다.”


顔淵死, 門人欲厚葬之. 子曰: “不可.” 門人厚葬之.

안연사 문인욕후장지 자왈 불가 문인후장지

子曰: “回也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非我也, 夫二三子也.”

자왈 회야시여유부야 여부득시유자야 비아야 부이삼자야



공자의 애제자 안연(안회)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장은 12편 ‘안연’이 아니라 11편 ‘선진’입니다. 무려 9개장에 등장하는데 그중 4개장이 안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연달아 소개됩니다. 특히 이 장의 내용은 안연의 죽음이 스승이었던 공자는 물론 공자 학단 전체에도 큰 충격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공자가 천하주유를 접고 노나라로 돌아온 뒤 아끼던 세 사람의 장례를 잇따라 치르게 됩니다. 귀향 1년 뒤인 기원전 483년 외아들 백어(공리)가 죽고 이어 애제자 안연이 숨집니다. 그리고 3년 만에 수제자 자로가 칼을 맞고 목숨을 잃습니다. 칠순 안팎의 나이에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앞서 보냈으니 그 충격과 상실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인간의 삶을 2가지 층위로 나눠 이해했습니다. 하나는 조에(zôé), 다른 하나는 비오스(bíos)입니다. 조에가 생명을 유지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벌거벗은 삶’, 사적인 삶이라면 비오스는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삶’, 공적인 삶입니다. 백어가 공자의 사적인 삶인 조에의 계승자였다면 안연은 공적인 삶인 비오스의 계승자였습니다. 그 둘을 동시에 잃은데 이어 가장 가까이서 공자를 지켜봐 온 인생의 목격자이자 동반자였던 자로까지 잃었으니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공자 학단의 미래를 짊어질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안연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도 엄청난 충격과 상실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공문을 스머프마을에 비견하자면 안연이야말로 모든 스머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스머펫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제자들은 안연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가 누구입니까. 예(禮)에 죽고 예에 사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또 과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을 강조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안연이 매우 가난했던 데다 불혹의 나이까지 벼슬길에도 나서지 않아 이렇다 할 지위도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분수에 맞게 조촐한 장례가 예에 부합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 못지않게 안연을 좋아하고 따랐던 제자들은 그런 안연의 처지가 너무 딱하고 안타까웠기에 더욱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고자 한 것입니다.


공자는 그런 제자들을 타박하면서 “안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나는 그를 아들처럼 대하질 못했다”라고 합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공자가 친아들 백어의 장사를 치를 때도 그 분수에 맞게 소박하게 치렀는데 안연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기엔 그렇게 아끼던 애제자의 죽음에 너무 인색한 것 아니냐는 주변의 눈총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 아니었을까 합니다. 친아들의 죽음이나 안연의 죽음이나 그 애석함은 다를 게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의명분에 맞지 않은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모습이 자칫 희석될 것을 저어한 것입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만류하지 않은 것은 공자 역시 제자들과 같은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언행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누구보다 컸던 공자였기에 비공식적으로 허여할지언정 공식적으론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엿보입니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증자(자여)-맹자-주자 식으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예가 아니라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원조였던 공자는 공식적으론 반대를 할지언정 비공식적으론 사람들의 마음길을 터줄 줄 아는 융통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공자야말로 공식적인 비오스의 삶과 비공식적인 조에의 삶을 조화시킬 줄 아는 그리스적인 프로네시스(실친적 지혜)의 실천가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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