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선진(先進) 제9장, 제8장
안연이 죽자 공자가 문상을 가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수행하던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지금 통곡하고 계십니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통곡하였느냐? 내가 저 사람을 위해 통곡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통곡한단 말이냐?”
顔淵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 曰: “有慟乎? 非夫人之爲慟而誰爲?”
안연사 자곡지통 종자왈 자통의 왈 유통호 비부인지위통이수위
안연이 죽었다. 공자가 말했다. “아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셔!“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안연사 자왈 희 천상여 천상여
안연을 앞서 보낸 공자의 충격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2개장에 걸쳐 소개돼 있습니다. 8장에선 안연의 부고를 처음 전해 듣고 느낀 공자의 절망감이 표출됐다면 9장에선 안연의 초상집으로 문상 갔다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온 상실감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예전엔 문상을 가면 “아이고, 아이고”하며 소리 내어 우는 곡(哭)을 하는 것이 상례(喪禮)였습니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슬픔을 표현할 때도 절제의 미덕이 필요했습니다. ‘남방 공자’ 자유가 “상을 당했을 때 슬픔을 다하되 그칠 줄 알아야 한다(喪致乎哀而止‧19편 자장 제14장)고 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헌데 그 누구보다 그런 예를 잘 아는 공자가 그 금도를 지키지 못하고 몸부림치며 대성통곡하고 만 것입니다. 원문의 ‘서럽게 울 통(慟)’이 뜻하는 바입니다.
누군가 무너져 내릴 듯 슬픔을 표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무참(無慘)해집니다. 말 그대로 참담함의 밑바닥을 보는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파도에 휩쓸려 가느라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조차 지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을 보면서 절반은 그 사람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고 절반은 나 자신마저 그 파도에 휩쓸려갈까 두려워 그 참담함의 소용돌이에서 건져내 주고 싶어지는 겁니다.
공자의 문상을 수행했던 제자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기분에서 넋을 놓고 울부짖는 공자를 흔들어 깨운 것입니다. “스승님 지금 너무도 무참히 울고 계십니다. 너무도 민망하오니 통곡을 멈춰주십시오.” 그 말에 공자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무너진 심신을 추스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립니다. “내가 그렇게 무참히 통곡했더냐? 안연이 아니면 내 누구를 위해 그토록 무참히 통곡하겠느냐?”
공자는 왜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슬퍼했던 것일까요? 당시 그의 나이 68세. 천명을 깨달은 지천명의 나이에 출사해 대부의 반열에까지 오르긴 했지만 삼환 정치에서 노나라를 구해내겠다는 꿈이 5년도 못 돼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13년간 자신의 식견과 경륜을 사줄 군주를 찾아 풍찬노숙의 세월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허망한 심신을 뉘일 고향땅에 돌아오긴 했으나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인생무상을 읊조릴 만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문의 계승자인 외아들 백어(공리)를 지천명의 나이에 떠나보내 황망했는데 학문의 계승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안연마저 불혹의 나이에 잃은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원투 펀치를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결정타까지 날아든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요? 물론 최후의 결정타는 아직 남아있었으니 3년 뒤 공자 인생의 반려 제자라 부를만한 자로의 죽음이었지만….
사실 대륙의 돈키호테, 공자는 어떤 고난에서도 굳은 의지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부도옹(不倒翁)이었습니다. 서른 살에 세운 뜻을 펼치려 그토록 동분서주한 것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자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통탄하다가도 “나를 알아주는 것은 아마도 하늘뿐”이라며 내면의 신념을 꺽지 않았습니다. 천하주유 말미 자신과 제자들의 목숨을 노리는 시련이 거듭됨에도 “주문왕이 세운 문(文)의 전통이 나에게 이어졌으니 하늘이 나를 없애지 않으실 것”이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토록 신념에 넘쳤던 사내가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를 되풀이해 외친 것입니다. 실로 지독한 좌절과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공자의 발언을 되씹어보면 그것은 하늘에 대한 일반적 원망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에게 있어서 안연은 요순과 탕왕, 문왕과 주공을 거쳐 자신에게까지 면면히 이어진 문의 전통을 계승할 진정한 후계자였던 것입니다. 그 전통을 현실정치 속에 실현하려던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더라도 후대에 그 등불을 전해줄 안연을 키운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헌데 그 마지막 희망의 등불마저 꺼져버리자 돌이키기 힘든 절망감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사정까지 꿰고 나면 공자의 통탄에는 단순히 하늘이 공자 자신을 버린 것을 넘어서 ‘문의 전통’을 끊어버림으로써 결국 세상을 저버렸다는 통렬한 자의식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별개로 앞서 살펴본 안연의 장례 형식에 대한 공자의 발언과 이 2개장의 내용을 비교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공자는 안연의 장례를 화려하게 치르려는 것에는 반대했지만 애도의 마음을 표현함에 있어선 최고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상례(喪禮)는 그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것입니다.
‘상을 치를 때는 슬픔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 자장의 발언(喪思哀‧19편 자장 제1장)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또 자유가 말한 ‘喪致乎哀而止’의 일반론을 뛰어넘어 자장이 말한 ‘喪思哀’의 심화론을 펼쳐 보여줌으로써 예에 있어 유연함의 중요성과 더불어 안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만천하에 각인시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