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선진(先進) 제6장
계강자가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했습니다만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기에 지금은 없습니다.”
季康子問: “弟子孰爲好學?”
계강자문 제자숙위호학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 불행단명사의 금야즉무
다원주의자였던 공자는 수백 명의 제자를 두루 사랑했습니다. 그중에서 유독 안연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이를 두고 편애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안연을 예뻐한 것은 공자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문의 제자들 대다수가 안연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했고 아무런 벼슬에도 오르지 못했던 그가 죽었을 때 공자의 반대에도 제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준 것입니다. 심지어 총명하기로 유명해 안연의 라이벌 됨직한 자공조차 “하나를 들으면 저는 겨우 둘을 깨치는데 안회는 열을 깨치는 사람”이라며 무릎을 꿇고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안연을 자신의 진정한 계승자로 여긴 것도 그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제자였기 때문일까요? 이 장에서 그 진짜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호학(好學)입니다. 공자는 “열 가구 사는 마을에 나만큼 신실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호학하지는 않을 것”(5편 공야장 제28장)이라 자신의 최대 장점으로 호학을 꼽았습니다. 공자는 그만큼 호기심이 많았고 배울 게 있다 싶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묻고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이를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 공자의 눈에 가장 배움을 즐기는 제자가 안연이었기에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것입니다.
6편 옹야 제2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되풀이해 나옵니다. 거기선 같은 신하인 계강자가 아니라 군주인 노애공이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인지 공자의 답이 좀 더 충실합니다. 안연이 호학한다는 내용 다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화를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不遷怒 不二過)”가 추가돼 있습니다. 화를 옮기지 않았다 함은 화나는 일이 있어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 함은 공자가 강조한 물탄개과(勿憚改過) 실천의 화신이란 뜻입니다. 안연의 남다른 인품을 보충한 대답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 공자가 안연을 후계자로 여긴 두 번째 이유는 그 인품이 훌륭한 점 때문입니다. 이를 ‘좋은 덕’이란 뜻의 호덕(好德)으로 표현한다면 안연을 공문의 후계자로 삼은 이유는 호학과 호덕이 됩니다. 이는 군자학이 치평의 도와 수제의 덕으로 구성된다는 점과 연결해 음미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호학은 지평의 도리를 터득하는 즐거움에 눈을 떴다는 것이고 호덕은 수제의 덕을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안연이 공자가 창안한 군자학의 진정한 계승자로 간택된 것은 바로 그 양대 기둥인 도와 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공문의 제자 중에서 무수한 제자가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헌데 안연은 아무런 벼슬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나라 공식 역사서인 ‘춘추좌전’에도 이름 한번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도와 덕의 완성형이었던 안연이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안연이 입신출세에 초탈했기에 그런 면도 있지만 그가 ‘공자 시즌2’에 해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해석입니다. 공자가 벼슬길에 나선 것도 군자학을 충분히 갈고닦은 지천명의 나이였습니다. 공자는 자신이 갈고닦은 군자학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는 꿈이 실패했을 경우 그 바통을 이어받아 공자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시킬 회심의 카드로서 안연을 준비시키고 있던 것입니다. 염백우, 자로, 중궁, 염유, 자공, 재아, 공서화 등을 그에 앞서 벼슬길에 나서게 한 것도 안연이 전면에 나설 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헌데 천하주유가 수포로 돌아가 공자가 후선으로 물러남에 따라 안연이 그 대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해야 할 순간에 선수생명이 끝나버리는 비극이 발생한 것입니다. 시즌1이 끝나자마자 시즌2까지 좌초했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플랜 A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오랜 세월 준비한 플랜 B가 시작도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없다’는 공자의 마지막 말 ‘금야즉무(今也則亡)’에서 짙은 허무와 깊은 절망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