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선진(先進) 제5장
남용은 ‘백규’를 하루 세 차례씩 되풀이해 읊었다. 그런 그를 공자는 형이 남긴 딸의 배필로 삼았다.
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남용삼복백규 공자이기형지자처지
백규(白圭)는 국가적 의식을 치를 때 면류복 차림의 임금이 두 손으로 쥐는 홀(笏)이 흰 옥으로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흰 옥으로 된 홀을 되풀이해 읊었다니 무슨 뜻일까요? 공자가 하은주 시대 노래 중 삼백 편을 골라 선집한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에 실린 ‘억(抑)’ 이란 노래 중에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흰 옥으로 된 에 있는 티는 오히려 갈아 없앨 수 있지만(白圭之玷 尙可磨也)/ 그대 말속에 있는 티는 그럴 수 없다네(斯言之玷 不可爲也).’
이어 다음의 가사가 이어집니다. ‘쉽게 말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無易由言 無曰苟矣)/ 혓바닥 붙들어 맬 수 없고, 뱉은 말 따라잡을 수 없다네(莫捫朕舌 言不可逝矣)/ 원한 사지 않는 말 없고, 보답 받지 않는 덕 없다네(無言不讎 無德不報).’
시경에 실린 시 중에서 아(雅)는 궁중 행사 때 연주된 노래를 말합니다. 소아(小雅)가 연회 때 여흥용 노래라면 대아(大雅)는 조회(朝會) 때 의전용 노래였습니다. 대아 편에 수록된 ‘억’은 위(衛)나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11대 제후 위무공(재위: 기원전 812년~기원전 758년)이 95세 때 후손에게 경계의 의미로 남긴 노래라고 전해집니다. 첫 구절이 ‘억억위의 유덕지우(抑抑威儀, 維德之隅)’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억(抑)은 ‘억누르다, 삼가다’는 뜻과 ‘장엄하다’는 뜻을 함께 함축합니다. 스스로를 억눌러 예법에 맞는 행동거지의 위엄을 드러내는 것은 덕의 네 모퉁이를 각 지게 유지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노래의 내용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향락에 빠지기 쉽고 한마디 말실수로 화를 부를 수 있으니 팽팽한 긴장감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노래에서 ‘입이 화를 부른다’는 뜻의 구화지문(口禍之門)이나 구시화문(口是禍門)의 메시지가 담긴 구절이 ‘백규’인 것입니다.
공자가 제자 남용(南容)을 조카사위로 삼은 이유가 평소에도 ‘백규’ 구절을 깊이 새기며 언행에 신중을 기하는 군자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공자는 외아들인 백어에게 가르침을 줄 때 “시는 배웠느냐?”만 물었을 정도로 시정이 흘러넘치는 사내였습니다. 그러니 매일 시를 읊조리는 남용이 흡족했을 것이고 더군다나 그 애송곡이 말조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백규’라니 더욱 맘에 들었던 것입니다.
5편 '공야장' 제1장에도 남용을 조카사위로 삼은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합니다. 거기에서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반드시 기용될 인물이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라도 옥살이할 인물은 아니기에’라고 설명합니다. 그만큼 언행이 반듯해 멸문지화를 면하게 할 진중한 사람이기에 일찍 숨진 형님이 남긴 딸의 배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후의 노나라가 무도한 나라가 되버린 탓일까요? 남용이란 인물은 ‘춘추좌전’ 등 춘추시대 역사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공자의 바람대로 조카딸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좋은 남편은 되어줬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이 내용을 감안할 때 14편 '헌문' 제5장에 등장하는 남궁괄이 남용이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힘듭니다. 헌문 편의 낭궁괄은 은나라 때 주군을 시해하고 사실상 왕위에 앉은 명사수 예와 예를 시해한 한칙의 아들이자 천하장사였던 오(奡)를 비판하는 발언을 합니다. 이는 위험천만한 발언이었습니다. 당시 노나라 제후 노소공을 폐한 계손씨 가문의 6대 종주 계평자와 그의 오른팔이었지만 훗날 반란을 일으킨 양화를 예와 오에 비견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혓바닥 붙들어 맬 수 없고, 뱉은 말 따라잡을 수 없다네’를 매일 같이 애송하던 남용이 그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말을 꺼낸 남궁괄과 동일인이라면 앞뒤가 안맞는 소리가 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