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로 공인받기 위한 조건

11편 선진(先進) 제4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효성스럼구나! 민자건’, 아무도 그의 부모 형제가 꺼내 든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구나.”


子曰: “‘孝哉! 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자왈 효재 민자건 인불간어기부모곤제지언



공자가 제자를 부를 때는 자(字)가 아니라 이름(名)을 불렀습니다. 따라서 공자 자신의 말이라면 첫마디에서 손(損)이라는 이름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자인 민자건이 등장합니다. 민자건은 공자도 함부로 대하기 힘든 외제자(畏弟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공자도 자로 존재해 준 것일까요? 아니면 많은 주석서의 말처럼 민자건 제자들의 입김으로 이 장이 삽입된 까닭에 존칭이 사용된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효재! 민자건’이 당대 노나라 도성인 곡부에서 유행어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즘 말로 치면 ‘효자하면 민자건이지!’쯤 되는 말로 인구에 회자됐던 거죠. 그래서 공자 귀에도 들어오게 되자 공자가 이를 인용하면서 ‘효자 민자건’의 이미지를 공인해줬다고 봐야 합니다.


그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당연히 민자건의 효행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부모와 형제일 것입니다. 원문의 곤제(昆弟)는 형제의 다른 말입니다. 비록 후대에 기록된 것이긴 하지만 민자건의 효행에 대한 에피소드 역시 가족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내용입니다. 계모 손에 자란 민자건이 계모가 낳은 두 아들에 비해 차별받으며 자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아비가 계모를 내쫓으려 할 때 “어머니가 계시면 헐벗는 사람은 저 하나지만 어머니가 안 계시면 네 형제가 모두 헐벗게 된다”며 만류했다는 사연 말입니다.


이는 부모의 일방적 학대에도 효심을 잃지 않는 다른 효자들의 사연과 조금 다릅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희생해 어짊을 이루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가 엿보입니다. 그래서 계모와 배다른 두 동생도 민자건의 넓은 마음 씀씀이에 감복해 그 내밀한 사연을 거리낌 없이 외부에 전하게 된 것 아닐까요? 주변에서 아무리 민자건이 효자라고 칭송해도 계모와 배다른 형제가 이를 승복하지 못하고 험담을 늘어놨다면 그처럼 널리 유행어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민자건이야말로 진정한 효자라고 공자의 공인을 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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