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선진(先進) 제3장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이라면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子曰: “回也, 非助我者也. 於吾言無所不說.”
자왈 회야 비조아자야 어오언무소불열
안연(안회)에 대한 공자 발언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판의 메시지가 담긴 내용입니다. 공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수긍하고 반색하기 때문에 공자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푸념이 담겼으니까요.
주희 이래 많은 주석가들은 공자가 이런 말로 안연을 비판하는 척 하지만 내심으론 기특하게 여겼다고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교훈이 될까요? 스승의 사랑을 담뿍 받는 제자라면 스승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무조건 좋아하고 따라 해야 한다? 설사 스승이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도 그게 본심이 아니니 흘려듣고 오로지 순종만 하라?
공자가 겨우 그런 속물적 처세론을 전하려고 이 말을 남겼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보다는 다른 2가지 교훈적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구체적 언어의 밖에서 문맥상 작동하는 메시지입니다. 공자 스스로 완벽한 성인이 되려면 멀었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언행에 허점과 약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내 말을 듣고 무조건 좋아만 하지 말고 적절한 비판을 가해줘야 허점과 약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으냐’는 취지의 발언을 꺼냈다고 봐야 합니다. 공자 스스로 “나도 약점 많은 인간일 뿐이다”를 간접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두 번째는 주자의 기대와 정반대의 메시지입니다. 공자가 말한 그대로의 메시지입니다. 살짝 살을 붙여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산다. 하지만 진정 발전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의 합리적 비판과 문제제기에 귀 기울여 야한다. 안회는 다 좋지만 그런 합리적 비판과 문제제기를 할 줄 모른다. 남들이 내가 그걸 즐길 것이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 나를 잘 꿰뚫는 안회만큼 나의 취약점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있겠는가? 나는 그의 합리적 비판에 목이 마르다. 그 갈증을 채워주지 않는 안회가 원망스럽다. 제자들 너희는 이를 명심해 나의 잘못을 보면 거리낌 없이 비판해 주기 바란다.”
안연에게 기대했던 그 역할을 대신한 제자가 바로 자로였습니다. 자로는 공자가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할 때마다 거침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을 가했습니다. 공자는 그 문제제기가 얼토당토않다 생각되면 “거칠고 졸렬하다”라고 매섭게 질책하기도 했지만 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그 비판을 기꺼이 수용했습니다. 난신적자로 볼 수 있었던 공산불요나 필힐의 초청에 응하려 했을 때나 위령공의 부인 남자와 독대했던 일에 대해 자로의 질책이 있을 때 공자가 변명하는 모습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자로가 임금 섬기는 법을 물었을 때 “허물이 있을 때는 감추려 하지 말고 대차게 들이받아라”라고 그런 자로의 돌직구 스타일을 격려한 사람이 공자입니다.
그런 공자가 과연 최고 애제자가 자신을 한 번도 들이받지 않는 것을 은근히 좋아했다고요? 겉으론 질책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흡족해했다면 공자가 그토록 싫어했던 향원(鄕源)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겉과 속이 다르다고 비판받은 향원들이 "공자도 뭐 우리랑 다를 바 없구먼"이라며 오히려 반색하지 않을까요? 공자의 제자를 자처한 인사들이 정작 자신들의 은밀한 욕망을 투영해 왜곡된 공자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 대표적 해석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장에서 공자의 메시지는 이렇게 2가지로 요약됩니다. "자신을 포함해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를 지적해 주는 쓴소리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헌데 누구보다 공자에게 정통하다는 사람들이 그 둘을 정반대로 뒤집어 해석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무오류의 성인이며 그렇기에 자신에게 쓴소리 할 줄 모르는 안연을 내심 어여삐 여겼다고. 저승에 있는 공자가 이보다 더 통탄할 곡학아세와 아전인수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