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의 전설적 10인

11편 선진(先進) 제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제자가 된 이들은 모두 입문 단계를 넘지 못했구나. 덕을 행함에 있어선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요, 언변이 뛰어나기론 재아와 자공이요, 정무를 처리함에 있어선 염유와 계로(자로)요, 예악과 고문에 정통하기론 자유와 자하가 있었느니라.”


子曰: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자왈 종아어진채자 개불급문야 덕행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재아 자공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

정사 염유 계로 문학 자유 자하



많은 논어 주석서들은 이 장을 둘로 나눠보기도 합니다. 진(陳) 채(蔡) 두 나라에서 고생할 때를 회상하는 내용과 ‘공문 4과(四科) 10철(十哲)’을 거명하는 내용입니다. 주희는 이 둘을 합쳐 하나의 장으로 묶었습니다. 말년에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가 천하 주유 말엽 진과 채의 국경지대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군사에 쫓겨 절체절명의 위기를 함께 겪었던 제자들을 회상하면서 그중 최고의 제자 10명을 뽑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둘을 하나로 묶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상 내용에 대한 해석이 다릅니다. 문에 이르지 못했다는 ‘불급문(不及門)’을 대부분 주석은 ‘현재 내 문하에 없다’고 해석합니다. 제 눈에는 ‘문에도 못 닿았다’로밖에 풀이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군자학의 단계를 집의 구조와 연결해 설명하기를 즐겼습니다. 중급자는 대청마루 위에 올라섰다는 승당(升堂), 고급자는 방안에 들어갔다는 입실(入室)로 표현했습니다. 그럼 초보자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문 앞까지 도달했다는 급문(及門)이나 문 안에 들어섰다는 입문(入門) 아닐까요? 그렇기에 불급문은 초급자 수준을 면치 못했다는 뜻으로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자가 진, 채 두 나라에 머물던 시기는 천하주유의 막바지였습니다. 따라서 그 무렵 제자가 되려고 따라나선 사람들이 위나라를 거쳐 노나라까지 따라왔다 하더라도 군자학의 수준은 초급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들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어디 보자 너희들 선배 중에서 입실의 경지에 든 사람이 10명은 된단다“면서 일종의 역할 모델을 제시해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름을 거론할 때 평소와 달리 명(名)이 아니라 자(字)를 쓴 것은 그들을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덕행(德行)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품에 안는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이 그 마음씀씀이를 행동에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 핵심은 충서(忠恕)이니 자신에겐 충실하고 남에겐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처신함에 있어서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4명의 모범사례를 따르라고 말한 것입니다. 언어는 언변이 좋은 것을 말합니다. 춘추시대 뛰어난 언변은 주로 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것을 뜻했으니 제나라의 대부가 된 재아와 노나라와 위나라 대부로 활약한 자공이 그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정사(政事)는 정무를 처리하는 행정능력을 말합니다. 전쟁과 같은 국가대사를 능률적으로 처리하며 필요한 인재를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함에 있어선 염유와 자로처럼 이미 검증이 끝난 인재를 본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학(文學)은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요즘의 의미가 아닙니다. 문덕을 펼치는데 수단이 되는 예악(禮樂)과 그 전거가 되는 역사와 고문(古文) 해석에 정통한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공자가 군자학으로 발효시키기 전 원시유가(儒家)의 본업에 투철한 것을 말합니다. 이에 있어선 훗날 ‘남방공자’로 불리게 된 자유와 위문후의 스승이 된 자하를 역할 모델로 삼으라 한 것입니다.


당나라 현종 때부터 이를 공문십철이라 부르게 됩니다. 이중 8명이 제 계열 제자라면 자 계열 제자는 자유와 자하 딱 둘 뿐입니다. 자 계열 제자 중에서 자유, 자하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장과 자여(증자)는 왜 빠졌을까요? 공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봐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자여는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공자는 대놓고 자여가 노둔하다 말할 정도로 생전에 자여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자장에 대해선 자장은 과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어 둘이 동급(과유불급)이라 평한 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똑 부러지게 질문 잘하는 자장을 총애하여 군자학의 골수를 일목요연하게 전해주는 것이 ‘논어’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자장이 언급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자장은 덕행을 제외하고 언어, 정사, 문학에 두루 두각을 나타낸 만능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렇지만 언어와 정사에 있어선 일찍이 관직에 진출한 제 계열 선배의 아성을 뛰어넘을 단계는 아직 안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일종의 와일드카드(11번째 카드)로 마음속 깊이 품고 있지 않았을까 미뤄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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