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선진(先進) 제1장
공자가 말했다. “먼저 예약을 배우고 관직에 나서는 것은 일반 백성이고, 관직에 나선 뒤 나중에 예약을 배우는 것은 공경대부의 자제이다. 만약 내게 인재를 뽑아 쓰라고 한다면 나는 먼저 예약을 배운 일반백성을 기용할 것이다.”
子曰: “先進於禮樂野人也. 後進於禮樂君子也. 如用之則吾從先進.”
자왈 선진어예악야인야 후진어예악군자야 여용지즉오종선진
20세기 중국 고전학자인 양백준은 야인(野人)과 군자(君子)의 대비에 주목했습니다. 군자란 본디 주나라 임금(왕)의 자제를 말하니 이들이 제후(공후백자남)가 되고 다시 제후의 자제들이 그 아래서 대대로 경대부의 벼슬을 제수받았습니다. 따라서 서양의 왕족과 귀족을 아우르는 개념이 곧 군자였던 것입니다.
야인은 그런 군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을 통칭합니다. 야인 중에서 육예(六藝)를 익혀 하위직 벼슬길에 진출한 사람이 공자와 같은 사인(士人)이 됐습니다. 따라서 야인은 육예에 포함된 예악을 먼저 배우고 나서야 관직에 진출하는 반면 군자는 혈통에 의해 관직 제수부터 받고 난 뒤 예약을 배운다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예악을 중심에 놓고 보면 선진은 일반 백성이요, 후진은 전통적 군자인 것입니다.
양백준은 이 장이 이런 계급적 차별에 대한 공자의 서늘한 비판이 담겼다고 봤습니다. “공자는 당시 경대부의 자제들이 부모의 비호를 받아 벼슬을 하면서 공부하는 상황에 불만을 갖은 듯하다.” 그러면서 공자가 배움을 중시하기에 예악을 나중에 배우는 경대부의 자제보다 예악을 앞서 배우는 선비(士)를 더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주희 같은 송유의 해석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해석입니다. 주희는 선진(先進)과 후진(後進)의 대비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를 각각 옛사람(선배)과 요즘 사람(후배)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옛사람의 예약은 질박하고, 요즘 사람의 예악은 세련되나니 내게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하면 질박한 옛사람의 예악을 택하겠다’고 풀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공자는 의고(擬古)와 복고(復古)에 심취한 보수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공자는 주희가 생각한 그런 보수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양백준이 얼핏 엿본 것처럼 귀족 자제가 우대받는 것에 불만을 품는 수준에 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혈통에 의해 지도자가 결정되는 당대의 시스템을 확 뒤집어야 한다는 혁명적 사상가였습니다. 다만 그것을 물리적 힘을 동원하지 않고 문덕(文德)의 힘으로 이루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 문덕의 힘은 이 장에서도 발견됩니다. 군자와 야인을 가르는 차별로 인해 오히려 야인들이 예악에 더 정통해진다는 통찰입니다. 이를 통해 야인이 선진이 되고 군자는 후진이 되는 일종의 윤리적 전회가 발생함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공자는 이를 토대로 혈통에 의한 지배자를 뜻하던 군자의 함의를 뒤집는 개념혁명부터 착수합니다. 언젠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치평의 도와 수제의 덕을 갈고닦는 사람으로 군자의 뜻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를 통해 왕과 공경대부의 자식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학문에 힘쓰면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상의 계급혁명의 사상적 씨앗이 뿌려집니다. 훗날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더냐'라를 내건 중국 최초의 농민혁명 ‘진승과 오광의 난’ 역시 이 씨앗에서 자라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런 사상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다시 교육혁명까지 단행합니다.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수업료로 한 묶음의 육포만 내면 군자가 될 수 있는 군자학을 가르치는 ‘유교무류(有敎無類)’를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문화적 혁명가로서 이런 공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인륜도덕의 마지막 수호자’로만 찬미하거나 ‘공자가 망해야 나라가 산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 민망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