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16장
사람의 기색을 보고 날아올라 허공을 빙빙 돌다 내려앉는다. 공자가 말했다. “산기슭에 사는 까투리에게도 때맞춤이 중요하구나, 때맞춤이 중요해!" 자공이 읍하며 갈 길을 재촉하니 공기를 세 번 들이마시고 떠나갔다.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색사거의 상이후집 왈 산양자치 시재시재 자로공지 삼후이작
주석서마다 해석이 제각각인 장입니다. 천하의 주희마저도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특히 후반부 자로가 등장하는 두 구절은 해석이 제멋대로입니다. 자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주희는 자로가 눈치 없이 꿩을 잡아 받치자 공자가 그 정성을 생각해 냄새만 맡고 일어섰다는 식으로 풀이합니다. 또 삼후(三嗅)가 원래는 삼격(三狊)이었다면서 자공이 꿩을 잡으려 하자 꿩이 세 차례 날아올라(狊) 이를 피했다고도 해석합니다.
이 장의 해석엔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꿩을 등장시키지 않은 채 그 행태를 묘파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점부터 시적입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공자의 발언을 통해 비로소 그 주체가 산에 사는 암꿩임이 밝혀집니다. 꿩은 수컷(장끼)이 아름답고 암컷(까투리)은 상대적으로 볼품없습니다. 그 볼품없는 까투리가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 않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헌데 공자의 마음의 눈에 그것이 예사롭지 않게 포착된 것입니다.
까투리가 푸다닥 푸다닥 날아다니는 이 심심한 풍경이 공자의 심금을 울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공자가 그 장면을 보며 경탄한 ‘時哉時哉’라는 표현에 그 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時)에는 시간, 계절. 시절 등 많은 뜻이 함축돼 있지만 여기선 적기(適期), 타이밍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까투리가 사람의 기색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날아오르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것에 대한 찬사인 것입니다.
이 장은 공자가 55세 무렵 조국이었던 노나라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순간을 서정적으로 포착한 것 아닐까 저는 상상해 봅니다. 지천명의 나이에 벼슬길에 나섰던 공자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국인 노나라를 떠날 무렵의 감회가 담뿍 담긴 장면이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요즘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야!”에 해당하는 발언을 내뱉으며 조국을 버리고 떠돌이 인생을 살게 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리라 결심한 순간 아니었을까요?
천하주유에 나설 당시 공자가 중시한 것도 타이밍이었습니다. 벼슬길에 나선 공자가 명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노나라와 제나라의 협곡 회동에서 제나라의 연회의식이 너무 유희에 치우쳐 예에 벗어남을 통렬히 비판하고 나서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얼마 뒤 제나라에서 보낸 미녀 가무악단의 공연에 취해 상경에 해당하는 계환자가 정무를 내팽개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자에 대한 공개적 모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자공이 먼저 분개해 사직하고 떠나자고 했습니다. 공자는 아직 적기가 아니라면서 숨을 골랐습니다. 그러다 노정공이 제사를 올리고 난 뒤 대부들에게 제사음식을 돌리면서 공자를 제외하자 비로소 노나라를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까투리가 사람의 기색을 살피다 이상하다 싶으면 날아오르는 모습에 공자는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것입니다. ‘하물며 날짐승도 저렇게 타이밍을 맞춰 들고나기를 반복하는데 나랑 다를 게 무엇이랴.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구나!’
자공은 그런 공자를 보면서 ‘어서 노나라를 벗어나야 합니다’며 갈 길을 재촉했을 겁니다. 혹시라도 계환자의 수하가 공자를 헤치려고 따라붙을까 염려해서였으니 공자 일행의 처지야말로 사람의 기색을 열심히 살피는 까투리 떼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세 차례 공기를 들이마시고 떠나갑니다. 그가 3차례 냄새를 맡은 것을 까투리와 장끼가 한참 짝짓기 할 철인 봄 냄새를 만끽하기 위함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노나라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국의 향기를 기억하기 위함으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운치 있지 않나요?
“군자는 낌새를 보면 곧 행동하지 하루 종일 기다리지 않는다(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주역’ 계사전 뇌지예(雷地豫) 괘의 효사 중의 일부입니다. 군자가 굳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선 아주 작은 기미를 포착해 발 빠르게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해설입니다. 이 장의 내용과 절묘하게 공명합니다. 모국인 노나라에서 자신의 처지가 옹색해졌다는 기미를 눈치 채고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모를 풍찬노숙의 길에 나선 공자의 모습이 시적으로 형상화된 구절이란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