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14장
잘 때는 시체처럼 자지 않았으며, 집에 있을 때는 모양을 내지 않았다. 상복 입은 사람을 보면 비록 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엄숙한 표정을 지었으며, 관을 쓴 사람과 앞 못 보는 사람을 만나면 비록 허물없는 사이라도 반드시 삼가는 표정을 지었다. 수레를 타고 가다고도 상복을 입은 사람에겐 예를 표했고, 국가의 문서를 짊어진 사람에게도 예를 표했다. 정성어린 음식을 대접받으면 반드시 안색을 바꾸고 일어났다. 우레가 치고 바람이 사나울 때는 반드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寢不尸, 居不容. 見齊衰者, 雖狎, 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 必以貌.
침불시 거불용 견자최자 수압 필변 견면자여고자 수설 필이모
凶服者式之, 式負版者. 有盛饌, 必變色而作. 迅雷風烈. 必變.
흉복자식지 식부판자 유성찬 필변색이작 신뇌풍열 필변
사실 이 장은 3개로 나눠야 합니다. 집에서 머무를 때의 행동거지를 다룬 첫 문장과 집 밖을 나와 거리를 지날 때의 행동거지를 다룬 중간 단락, 다른 집을 방문했을 때에 대한 마지막 두 문장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로 묶어 소개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이를 한 장으로 엮는 주석서가 많은 데다 그렇게 학술적이고 세분화된 해석까지는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입니다. 공자의 집에서 시작해 거리를 지나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까지의 여정으로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먼저 집에 있을 때 ‘시체처럼 자지 않는다’는 무슨 뜻일까요? 장례 치를 때 시신을 하늘을 바라보고 눕게 하기에 반드시 누운 자세로 자지 않는다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그런 취지였다 하더라도 ‘한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자지 않는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더 현대적 해석일 것 같습니다. 척추 건강과 위장 소화를 돕기 위해 옆으로 자는 것이 좋다는 의학적 소견도 있고 바른 호흡과 폐 건강을 위해선 바로 누워 자는 것이 좋다는 의학족 소견도 있습니다. 이를 감안해 자세를 바꿔가며 잔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어떨까요?
그다음 ‘거불용(居不容)’에 대해선 ‘거불객(居不客)’이어야 하는데 오기가 된 것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평소 집에 있을 때는 손님 맞을 때의 공손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앞서 소개한 20세기 중국 고전학자 양백준은 손님과 마주 앉을 때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런 자세를 취하지 있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럼 어떤 자세였을까요? 양백준의 고증에 따르면 두 발바닥으로 바닥을 버티고 무릎은 굽히되 엉덩이는 바닥에 대지 않는 쭈그려 앉는 자세였다고 합니다. 요즘 집에서 이렇게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따라서 그 취지를 좇아 집에선 꾸미지 않고 편안하게 있었다로 새김이 적절할 듯합니다.
그 뒤로 어려운 한자가 몇 개 등장합니다. 齊衰는 여기선 ‘제쇠’가 아니라 ‘자최’로 발음하는데 뒤에 나오는 흉복(凶服)과 마찬가지로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상복(喪服)을 뜻합니다. 또 압(狎)과 설(褻)은 비슷한 뜻으로 전자는 서로 익숙하고 편안한 사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흉허물 없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또 식(式)은 수레를 타고 갈 때 몸을 앞으로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가로대를 식(栻)이라 하는데 손으로 이 식을 붙잡고 기대면서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는 것을 말합니다. 판(版)은 호적이나 지도와 같은 공문서를 통칭합니다. 전체적으로 공자가 걸어서 가든 수레를 타고 가든 상복을 입은 사람이나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 또는 장애인을 만나면 공손한 태도로 예를 표했다는 뜻입니다.
손님으로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공자의 행동거지가 재미있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대접받게 되면 반드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손사래를 치거나 감읍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성찬을 보통 진수성찬의 의미로 새기는데 공자의 성격상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이 나오면 반드시 정중한 리액션을 보였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옳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레가 치고 바람이 사나울 때는 반드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는 문장 역시 남의 집에 머물 때의 행동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집에 있을 때는 편안하게 있었으니 굳이 놀란 내색을 할 필요까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손님으로 있을 때는 혹여 주인이 놀라고 당황할 수 있으니 “어이쿠, 무슨 일이랍니까”라며 먼저 불안한 기색을 보임으로써 주인의 체통을 세워주려는 배려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