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13장
벗이 죽었는데 장례 치를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빈소를 차리라”고 말했다. 벗의 선물이 비록 수레나 말일지라도 제사상에 바쳤던 고기가 아닌 이상 받을 때 절하지 않았다.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붕우사 무소귀 왈 어아빈 붕우지궤 수차마 비제육 부배
공자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장입니다. 붕(朋)은 이런 시절 추억을 함께 나눈 죽마고우요, 우(友)는 생사고락의 뜻을 같이하는 지란지우입니다. 붕우는 이를 다 아우르는 친구, 벗의 통칭입니다. 첫 문장은 슬픈 일을 나눌 때 자세를 보여준다면 두 번째 문장은 기쁨을 나눌 때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친구가 죽었는데 빈소를 차릴 곳이 없다는 것은 그가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신세라는 소리입니다. 직계존속과 친척이 다 없어 장례를 치러줄 사람도 없다는 뜻이지요. 공자는 그런 친구가 있을 때 기꺼이 자신의 집에 빈소를 차려줬다고 합니다. 그 말은 자신 또는 자신의 아들을 상주로 삼고 일체의 장례비용까지 부담했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 훗날 보답 받을 길이 없는 걸 알면서도 친구의 마지막 길에 아낌없이 후의를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친구가 공자에게 가진 것을 나눠줄 때는 덤덤하게 받았습니다. 예를 중시하니 당연히 깍듯하게 사례할 법한데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일한 예외는 제사상에 바쳤던 고기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제사상에 바쳤던 고기는 친구의 조상에게 바쳤던 것이니 고개 숙여 예를 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밖의 것은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해도 친구 본인의 것이기에 특별한 예를 표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만큼 우정을 나누는 사이에선 물욕을 초월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베풀 때 보답을 바라지 않듯이 상대 역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우정에서 선물을 준다는 굳건한 상호 믿음이 있었단 이야기입니다. 우정을 중시한다는 사람도 쉽게 넘보기 힘든 경지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친구 중 하나가 순수한 우정의 발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보답을 바라거나 불순한 의도를 갖고 선물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즉석에서 바로 돌려보낸다면 우정을 쌓은 세월을 너무 쉽게 저버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아마도 공자는 그에 값하는 다른 선물을 마련해 친구에게 보냈을 것입니다. 그 친구가 우정을 지키고 싶다면 바로 달려와 사과를 하거나 해명의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