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이 살아있는 공자의 행동준칙

10편 향당(鄕黨) 제11장

by 펭소아

임금이 음식을 내리면 반드시 똑바로 앉아 먼저 맛을 보았다. 임금이 날고기를 내리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에게 올렸다. 임금이 산 짐승을 주면 반드시 길렀다.

임금을 모시고 식사할 때는 임금이 고수레를 하는 동안 먼저 음식을 먹었다. 병이 들어 임금이 문병 오면 머리를 동쪽에 두고, 조복을 덮고, 허리띠를 걸쳤다. 임금이 부르면 수레를 끌 말에 멍에를 메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출발했다.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군사식 필정석선상지 군사성 필숙이천지 군사생 필휵지

侍食於君, 君祭先飯. 疾. 君視之, 東首, 加朝服, 拖紳. 君命召. 不俟駕行矣.

시식어군 군제선반 질 군시지 동수 가조복 타신 군명소 불사가행의



공자가 노나라 대부가 되어 나라의 녹을 먹을 당시 제후를 섬기던 자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엔 제후가 대부에게 선물로 먹을 것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리된 음식을 받으면 정좌해 먼저 맛을 본 뒤 집 안 사람과 나눠 먹었고, 생고기를 받으면 먼저 사당에 올리고 난 뒤 조리해 먹었으며 산 채로 보내면 바로 잡아먹지 않고 키웠다고 합니다. 畜은 보통 가축을 뜻하지만 '기르다'는 동사일 때는 ‘휵’으로 읽습니다.


이것이 당대의 예에 부합하는 행동이었을까요? 일부 그런 내용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자 스스로 정한 합리적 원칙에 따른 행동준칙으로 보입니다. 조리된 음식은 오래 두면 상하기에 가족과 나눠 먹되 신하 된 도리로서 자신이 먼저 맛을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와 달리 생고기는 조리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먼저 조상에게 올린 뒤 천천히 요리해 먹고, 산 채로 보낸 것은 잡아서 조리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니 한동안 키우다 꼭 필요할 때 잡아서 요리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후가 신하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할 땐 성찬(盛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당시 제후는 성찬이 나오면 그 일부로 먼저 하늘에 제(祭)를 올린 뒤 식사를 했습니다. 음식을 조리한 요리사가 제를 올린 음식을 먼저 맛을 봤으니 ‘기미(氣味)’를 겸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음식을 먹기 전 ‘고수레’를 외치며 음식 일부를 허공에 던져야 음식을 먹고 탈이 나지 않는다는 민간전통은 이의 변형 아닐까 합니다. 이때 공자가 먼저 음식을 먹는다는 말은 제후의 손님으로 접대받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기미를 한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무난해 보입니다.


대부가 병들어 누워있을 때 제후가 병문안을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후는 항상 남면(南面)을 해야 하기에 방의 북쪽에 앉아야 했는데 공자는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제후가 고개를 왼쪽으로 틀고 말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에 그랬을까요? 아니면 머리를 동쪽으로 두는 것이 생기(生氣)를 받을 수 있어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까요? 제 생각엔 전자가 더 맞을 듯합니다. 이때 평상복 차림으로 제후를 볼 수 없지만 차마 조복까지 입을 순 없기에 조복을 몸 위에 덮고 허리띠를 걸쳐 예를 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제후의 호출이 있으면 조복을 갖춰 입고 득달같이 달려갔습니다. 이때 수레를 끄는 말에게 멍에를 메는 작업이 미처 끝나지 않았으면 걸어서라도 먼저 출발했다는 설명입니다. 헌데 자세한 주석을 살펴보면 걸어서 가다가 수레가 뒤쫓아 오면 다시 이를 타고 갔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왜냐? 대부는 걸어서 다니면 안 되고 수레를 타고 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차피 타고 갈 거 수레가 준비되길 기다렸다가 타고 가면 될 텐데 왜 그랬을까요? 말로써 재촉하는 것을 피하고 행동으로써 마부가 수레를 빨리 준비해 쫓아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랫사람에게 ‘갑질’을 하지 않기 위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솔선수범한 것입니다. 이렇게 공자의 예는 그 디테일에서도 섬세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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