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목록 1호가 불탈 뻔했을 때

10편 향당(鄕黨) 제10장

by 펭소아

마구간에 불탔다. 공자가 조정에서 퇴청해 “사람이 다쳤느냐?”고 하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구분 자퇴조왈 상인호 불문마



“사람이 먼저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딱 맞는 내용입니다. 화재로 재산이 축났을 터인데 그보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시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말도 생명인데 왜 말에 대해선 묻지 않았느냐는 시비는 이때가 2500년 전임을 망각한 발언입니다. 당시 중국엔 노예제도도 있었습니다. 고대인들이 노예의 목숨을 어떻게 여겼는지를 안다면 왜 동물은 사랑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진 않을 것입니다.


공자는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추읍의 읍재를 지냈으나 공자가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셨으니 식읍도 없었을 것이니 물려받은 재산도 적었을 것입니다. 공자가 관직을 맡았던 기간은 5년이 안 됐고 그 이후 13년은 해외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따라서 주 수입원은 제자를 받아 육예(六藝)를 가르치며 받은 수업료가 다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즘의 일타강사처럼 떼돈을 벌었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가 3000명에 이른다 했지만 그렇게까지 많았을 리 없습니다. 설사 그 숫자가 맞다 해도 대략 40년간 키워낸 제자이기에 연평균 80명이 안됩니다. 또 가난한 제자에겐 육포 한 묶음만 받고도 가르쳤으니 큰돈을 모을 수준은 못됐을 겁니다.


그런 공자에게 가장 큰 재산은 대부로서 품위를 유지하는데 드는 4마리 말이 끄는 수레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천하주유를 마치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애제자 안연이 죽었을 때 공자의 수레로 안연의 외관을 삼고 싶다는 청을 거절한 것으로 봐서는 수레 2대를 굴릴 형편까지는 못됐던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말과 수레는 공자의 재산목록 1호로 봐도 무방합니다. 헌데 그 재산목록 1호를 보관해두는 곳에 불이 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와서 물은 것은 딱 하나. “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였다는 것이 감동적인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은 그다음으로 재산상의 피해 정도를 확인하기 마련인데 공자의 질문은 딱 거기서 그쳤다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물론 공자가 묻지 않아도 집안 식구나 아랫사람들이 다른 피해상황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는 불문마(不問馬)의 세 글자가 말해주는 것은 “그것은 중요치 않다”라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상대의 찬탄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해 들은 제자들도 “어찌 그러실 수가 있을까?”라고 경탄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 에피소드도 ‘논어’에 수록된 것입니다. 조정에서 퇴청했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저 에피소드는 공자가 50대에 노나라에서 대부 벼슬을 할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대단합니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수레와 말을 마련하게 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없던 수레와 말이 생겼으니 그걸 아끼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더 컸을 것입니다. 새 차를 처음 뽑았을 때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람의 안위만을 챙겼다는 것이야말로 공자가 얼마나 가치관이 뚜렷하고 또 그릇이 큰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천하의 기재들이 공자를 하늘 같은 스승으로 섬긴 이유가 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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