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9장
다른 나라로 안부를 전하는 사람을 보낼 때는 두 번 절하고 보냈다. 계강자가 약을 보내자 절을 하고 받으면서 말했다. “이 공구가 아직 약효를 몰라 감히 맛보지 못합니다.”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康子饋藥, 拜而受之曰: “丘未達, 不敢嘗.”
문인어타방 재배이송지 강자궤약 배이수지왈 구미달 불감상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고 대신 사람을 시켜서 인사를 전하거나 물건을 받을 때 공자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심부름꾼일지라도 상대를 직접 대하듯 정중하게 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강자가 약을 보냈다는 것은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뒤의 일일 것입니다. 노령의 공자가 병환 중이란 소식에 약을 보냈을 것입니다. 연배는 공자보다 20세 이상 어렸을지 몰라도 노나라 상경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보낸 것이라고 병석의 공자가 직접 일어나 절까지 하며 이를 받은 것입니다. 과연 자신이 정한 준칙에 투철한 공자를 엿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공경대부가 보내는 음식은 그 자리에서 정좌하고 맛보는 것이 공자가 정한 원칙입니다. 하지만 게강자가 보낸 것은 약이기에 그 성분을 아직 알 수 없어 바로 맛보지 못함을 이해해달라고 말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공자가 못마땅해하는 삼환정치의 수괴가 보낸 약이라 먹지 않을 것임을 에둘러 말한 것이라 하는데 공자를 좀생이로 여기는 과도한 해석입니다. 사람의 정성을 헤아려서 그 약이 병환에 도움이 된다면 거리낌 없이 복용했을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외국으로 가는 심부름꾼에 두 번 번 절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습니다. 많은 주석서는 더욱 정중함을 표하기 위해서라고 풀이합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한 번은 문안인사를 받을 사람에 대한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인사를 전하기 위해 먼 길을 갔다 와야 하는 심부름꾼에 대한 감사의 표시 아니었을까요?
‘논어’를 정독하면서 공자가 아랫사람이나 사회적 소수자에게 ‘갑질’을 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마음을 기울였다는 점을 재발견했습니다. 공자야말로 진정한 인본주의자임을 꺠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두 번의 절 중 하나는 심부름꾼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제 마음대로 상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