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29장
공자가 말했다. “슬기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자왈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지인용(知仁勇)은 14편 '헌문' 제28장과 공자의 손자 자사(공급)가 집필했다고 알려진 ‘중용’에도 등장합니다. 헌문 편에선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군자삼도(君子三道)’라며 인지용의 순서로 소개됩니다. '중용’에선 ‘군자삼덕(君子三德)’으로 소개돼 있는데 지인용의 순서로 돼 있습니다. “배우기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깝고(好學 近乎知), 힘써 행하는 것은 인에 가깝고(力行 近乎仁),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에 가깝다(知恥 近乎勇).”
군자학에서 어짊(仁)은 도(道)와 덕(德)을 포괄하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따라서 지(知)와 용(勇)은 어짊 다음에 등장하는 헌문 편이 공자의 생각에 더 가깝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군자학의 3개 심화반’에서 주장했듯이 육예(六藝)에 대한 기본 학습을 마치고 난 뒤 공직에 나가 정무직을 맡을 사람은 인(仁)반, 학예직을 맡을 사람은 지(知)반, 군사업무를 맡을 사람은 용(勇)반으로 나뉘어 심화학습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 3개 심화반에서 각각 얻게 되는 성취감을 공자가 저런 식으로 표현한 것 아닐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감정은 모두 부정어로 돼 있습니다. 근심이 없고(不憂), 미혹이 없고(不惑), 두려움이 없다(不懼). 이를 긍정어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근심이 없으면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요, 미혹이 없으면 지적인 희열에 찰 것이요, 두려움이 없으면 당당함이 넘칠 것입니다.
응? 그러고 보니 비슷한 표현이 떠오릅니다. 유명한 논어의 첫 구절입니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첫 구절은 배움을 통해 새로운 것을 깨닫고 터득해가는 기쁨을 말한 것이니 ‘지자불혹(知者不惑)’과 궤를 같이 합니다. 두 번째 구절은 보통 우정의 뜻으로 새깁니다. 하지만 ‘나의 어짊에 감복해 뜻을 함께 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성취감으로 새길 수도 있으니 인자불우(仁者不憂)와 공명이 이뤄집니다. 세 번째 구절은 확실히 다릅니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의연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군자’라는 뜻으로 풀어내면 백전 불굴의 용기라는 점에서 용자불구(勇者不懼)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 생각의 전개와 변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군자학의 3대 범주로서 어짊, 슬기, 용기에 대한 개념 규정일 것이니 이것이 헌문 편에 등장하는 군자삼도입니다. 계통에 대한 이런 발상은 곧 개별 주체가 군자가 되기 위해 위한 개체 발달 과정에 대한 사유로 이어집니다. 먼저 배움의 기쁨을 깨닫고, 공동체를 가꿔가기 위한 리더십으로서 어짊의 가치를 터득하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림 없이 군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헌문 편의 ‘인지용’이 자한 편에서 ‘지인용’으로 전환되고 ‘중용’에서 군자삼덕의 변주로 이어진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공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내적인 희열감을 안겨준 사건이 무엇이냐 했을 때 세 번째 변용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린 날 학문을 익히며 실존적 희열에 눈뜨고, 그런 학문적 연마를 통해 공동체적 삶을 이끌 어짊의 가치를 재발견해 군자학을 일구고, 마지막으로 남들이 불가능한 꿈이라 비웃었음에도 그 군자학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여생을 바쳤으니 분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최후의 변용은 3가지 핵심 개념의 무의식적 변용까지 수반합니다. 공자가 자신의 시그니처로 자부했던 호학(好學), 공자가 추구했던 최고의 가치로서 어짊(仁), 마지막으로 호학과 어짊을 종합한 인간으로서 군자(君子)라는 3단계에 걸친 변용입니다. 군자학의 3가지 범주에서 출발한 개념이 공자의 인생을 관통하는 3가지 키워드로 변신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