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누구?

9편 자한(子罕) 제28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

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송백(松柏)을 한국에선 소나무와 잣나무로 새깁니다. 하지만 중국의 중원에는 잣나무가 자라지 않기에 백은 옥편에 나오는 것처럼 측백나무가 맞습니다. 상록수로 비슷하긴 하지만 잣나무는 소나무과의 식물이고 측백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식물입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문화적 변용이 있기 마련 백을 잣나무로 새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후조(後彫)에 대해선 ‘늦게 시든다’는 뜻의 후조(後凋)로 새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길 조(彫)가 시들 조(凋)의 대체자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나마와 잣나무, 측백나무는 상록수이기에 죽기 전에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문의 彫의 뜻을 살려 ‘나중에 돋보인다’라는 뜻으로 새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후조가 ‘부조(不凋)’를 운치 있게 표현한 것이라는 리쩌허우의 해석이 마음에 듭니다. 중국 고문헌에는 부(不) 대신 후(後)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정성을 덜어내면서 그 뜻을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도 ‘시들지 않는다’를 ‘늦게 시들다’라고 에둘러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멋스럽게 다가섭니다.


대다수 식물이 푸르른 봄과 여름에는 차이를 모르다가도 조락의 계절인 가을과 겨울이 돼서야 비로소 상록수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표현은 문학적 비유입니다. 시련과 역경이 닥쳤을 때 꿋꿋하게 지조와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누군지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 영락을 겪게 됐을 때 평소 절친하다고 여겼던 사람 중에서 진짜 우정과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제주도로 유배 가 있던 추사 김정희가 논어의 이 구절을 토대로 '세한도'를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공자의 삶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한때 노나라 대부의 반열에 오르고 중원을 떠돌며 객경(客卿)의 자리를 넘 볼만큼 잘 나갔던 공자가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한 뒤 제자들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출세를 위해 스승의 뜻을 저버린 염유와 재아 같은 제자도 있는가 하면 죽는 순간까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한 자로나 스승이 죽고 난 뒤 부모 3년상의 2배인 6년상을 지킨 자공 같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주희와 같은 송유는 그런 자로와 자공을 각각 무부(武夫)나 장사치라며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제가 볼 때는 자로와 자공이야말로 공문이 배출한 진정한 송백(松柏)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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