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27장
공자가 말했다. “해진 무명옷을 걸치고 여우와 담비 가죽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서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중유로다. ‘질투하지 않고 탐내지 않는데 어찌 착하지 않은 짓을 하겠는가?’“
자로가 이를 늘 읊고 다녔다. 공자가 말했다. “그 역시 도이긴 하지만 어찌 착함으로 만족할꼬?“
子曰: “衣敝縕袍, 與衣狐貉者, 立而不恥者, 其由也與. ‘不忮不求, 何用不臧?’”
자왈 의폐온포 여의호학자 입이불치자 기유야여 불기불구 하용부장
子路終身誦之. 子曰: “是道也, 何足以臧?”
자로종신송지 자왈 시도야 하족이장
자로(중유)는 상남자였습니다. 그래서 겉치장에 신경 쓰는 법이 없었습니다. 옷은 몸을 가리면 충분하다 생각했기에 값비싼 옷을 입은 사람과 비교돼도 무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가의 사치품을 ‘명품’이라 추켜세우며 그걸 갖지 못해 안달하는 현대인은 넘볼 수 없는 시크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였던 셈입니다.
공자는 이를 높이 샀습니다. 그럼 공자 자신은 어땠을까요? 다른 사람의 옷차림이 허술한 것을 두고 뭐라 할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미의식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분명한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공자의 패션 감각’(10편 향당 제4장)을 살펴보면 공자는 검소할지언정 옷 색깔에 맞춰 여러 벌의 가죽옷을 갖춰 입을 정도로 멋쟁이였습니다. 누군가 성장을 한 사람 곁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서있을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더욱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로를 상찬한 것입니다.
공자는 그를 칭찬하며 ‘시경’의 시구절을 함께 읊었습니다. 패풍(邶風)편에 나오는 ‘웅치(雄雉)’라는 시의 마지막 두 구절입니다. 패풍은 옛 은나라 도읍지 북쪽 지역에서 유행하던 민요입니다. 웅치는 수꿩, 곧 장끼를 말합니다. 떠나간 장끼를 그리워하는 까투리의 마음에 의탁해 군역에 동원돼 멀리 떠나가 있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는 아낙네의 노래입니다. 그 마지막 구절이 ‘여러 군자님들, 덕행을 모르지 않겠지요? 남을 질투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은데 어찌 착하지 않은 짓을 할까요?(百爾君子 不知德行. 不忮不求 何用不臧)입니다.
기(忮)는 ‘해친다’와 ‘질투한다’ 2가지 뜻이 있습니다. 문맥에 따라 2가지 풀이가 다 가능합니다. 이 장에선 자로와 관련해 남이 비싼 옷을 입을 것을 질투하지 않는다가 더 어울리기에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장(臧)은 선(善)과 동의어로 ‘착하다’와 ‘좋다’ 2가지 뜻이 다 가능합니다. 마지막 구절의 '하족이장(何足以臧)'과 연계했을 때 ‘착하다’로 해석함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이 구절은 나랏일 하는 관리들에 대한 항변이 담겨있습니다. 지아비를 차출한 것이 군대를 일으켜서인데 방어용이 아니라면 그 밑바탕에 다른 나라에 대한 질투심과 탐욕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어찌 착한 일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감안하고 이 장을 다시 읽어보면 공자가 참 속이 깊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는 자로의 장점을 상찬하면서도 무인인 자로의 호전적 면모를 계산에 넣고 일부러 반전(反戰)의 메시지가 뚜렷한 시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자로가 공자와 처음 대면할 때 꿩의 붉은 깃털을 꽂은 관을 쓰고 나타나 ‘한판 붙자’는 자세로 덤벼들었음을 기억한다면 더욱 ‘웅치’의 시구절을 인용한 것이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의 상찬에 감격한 자로가 단지 그 해당 구절만 읊조리고 다녔을까요? 시에 조예가 깊지 않아다 하더라도 ‘웅치’ 전체를 통째로 암송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암송하다 보면 그 시에 담긴 강렬한 반전의 메시지도 깨닫게 됐을 겁니다. 장끼를 그리워하는 까투리의 애달픈 마음과 전쟁터에 낭군을 보내고 노심초사하는 아낙네의 마음도 헤아리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나랏일을 돌보는 군자도 사심이 없어야 불필요하게 군사를 일으키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됐을 것입니다.
공자의 마지막 말은 혹여 자로가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하여 떠보는 질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내가 너의 사심 없음을 칭찬하기 위해서만 그 구절을 인용했을까? 군자의 도를 깨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 전쟁터에 끌려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녀자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함을 과연 네가 깨쳤느냐? “ 이에 대해 자로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안연과 중궁이 그러했듯이 “이 중유가 비록 어리석고 둔하지만 그 말씀을 받들겠나이다(油雖不敏, 請事斯語矣)”라 답하지 않았을까요?
'웅치'의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실어놓으니 같이 한번 음미해보시기를.
수꿩이 날아가네, 푸드득 푸드득 날갯짓하며
雄雉于飛 泄泄其羽(웅치우비 예예기우)
사무치는 이 그리움은 그대 먼 곳에 보내야했기에 생긴 것
我之懷矣 自詒伊阻(아지회의 자이이조)
수꿩이 날아가네, 오르락내리락 울어대며
雄雉于飛 下上其音(웅치우비 하상기음)
나를 두고 가신 님 내 속을 다 태우네
展矣君子 實勞我心(전의군자 실로아심)
세월가는 걸 지켜보며 하염없이 님 생각뿐
瞻彼日月 悠悠我思(첨피일월 유유아사)
천리만리길 먼데 내 님 어찌 오시려나?
道之云遠 曷云能來(도지운원 갈운능래)
여러 군자님들, 덕행을 모르지 않겠지요?
百爾君子 不知德行(불지덕행 백이군자)
질투하지 않고 탐내지 않는데 어찌 착하지 않은 짓을 할까요?
不忮不求 何用不臧(불기불구 하용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