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군을 동원해도 뺏을 수 없는 것

9편 자한(子罕) 제26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엄청난 병력의 군대를 상대로 그 장수를 빼앗을 순 있어도, 한 명의 사내를 상대로 그 마음을 빼앗을 순 없다.


子曰: “三軍, 可奪帥也, 匹夫, 不可奪志也.”

자왈 삼군 가탈수야 필부 불가탈지야



현대의 삼군(三軍)은 육해공군을 아울러 말합니다. 춘추시대의 삼군은 제후가 거느리는 군대 규모의 최대치를 말합니다. 당시 1군(軍)은 1만25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됐는데 국력의 크기에 따라 제후는 공식적으로는 1군~3군의 병력을 거느릴 수 있었습니다. 3군이면 3만7500명의 병력입니다. 주나라 왕(천자)은 그보다 2배가 많은 6군인 7만5000명의 직할군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삼군의 숫자가 얼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많은 군대로 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삼군과 필부를 비교한 것입니다. 필부의 사전적 의미는 ‘신분이 낮고 보잘것없는 남자’를 뜻합니다. 여기선 필마(匹馬)가 ‘한 필의 말’을 뜻하듯 단 한 명의 사내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목숨이 뺏기는 한이 있어도 그 뜻을 꺾지 않는 사내는 이미 ‘보잘것없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수만 명의 병이 지키는 군대의 수장(제후)을 뺴앗을 순 있어도 단 한 명 사내의 마음을 뺴앗을 순 없다’가 됩니다. 왕과 제후의 핏줄에게만 적용되는 군자라는 호칭을 인덕과 학문을 닦는 예비지도자라는 뜻으로 전환시킨 공자의 호연지기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필부는 곧 공자 자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설사 수만의 병력을 끌고 와서 목숨을 위협하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택한 그 길을 앞서 걸어간 성인과 그 뒤를 따를 후학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원문의 뜻(志)을 현대적 용어로 번역하면 곧 ‘양심의 자유’입니다. 설사 신체적 위협을 직접 가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물리적 압박을 통해 그 누군가를 굴복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양심의 자유에 의거한 동의는 구할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영웅이 잘 훈련된 군대를 동원해 수백수천의 성채를 함락시킬 순 있어도 여인의 사랑하는 마음을 정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그런 양심의 자유를 얻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공자가 강조한 문덕(文德)입니다. 무력과 군사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말과 글의 힘이 곧 문덕입니다. 고대 서양철학의 용어를 빌리면 신화적 언어인 뮈토스(mythos)의 힘, 논리적 언어인 로고스(logos)의 힘, 윤리적 언어인 에토스(ethos)의 힘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힘을 발휘하는 사람의 언행일치를 전제로 할지언정 곧 언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공자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의 제목인 ‘언어에 대해 논하다’라는 ‘논어(論語)’가 된 것이며 그 책의 맨 마지막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지언(知言)이 강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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