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하지 못함을 가하노라

9편 자한(子罕) 제30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함께 같은 걸 배울 순 있어도 함께 길을 갈 순 없다. 함께 길을 갈 순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다. 함께 설 순 있어도 함께 저울질할 순 없다.”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



군자학의 과정을 학(學) 도(道) 립(立) 권(權) 4단계로 풀었습니다. 학은 배움이니 공자학단의 기초과목인 육예(六藝)일 수도 있고 공자에 의해 유가(儒家)의 학문으로 재규정된 예(禮) 사(史) 문(文)일 수도 있습니다. 도는 여기선 비유적 의미로서 이 학문을 통해 지향하는 것입니다. 훗날 제자백가의 분기가 여기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다. 어진 정치의 실현을 통해 백성의 근심을 덜어줄 것인가(유가), 법질서 확립을 통해 부국강병을 지향할 것인가(법가), 사랑의 확장을 통해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지향할 것인가(묵가), 출세간을 감행해서라도 영혼의 자유를 추구할 것인가(도가)….


도가 공통의 방향성이라면 립은 개인적 결단입니다. 같은 길을 걷는다 하여도 자신이 멈춰야 할 때와 가야 할 때를 정하는 것은 개인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해도 그 실천을 위해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뜻한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어짊을 추구하더라도 덕의 함양에 힘쓰는 수제파가 있고 도의 터득과 운행에 힘쓰는 치평파가 있듯이. 또 행정의 자로, 외교의 자공, 학문의 자하처럼 저마다 쓰임이 다르듯이.


권은 본디 저울질을 한다는 뜻으로 저울의 추를 이동하여 경중을 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 상황 변화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을 뜻합니. 같은 수제파라도 여러 덕목 중에 무엇을 우위에 둘지 저마다의 잣대가 다릅니다. 같은 치평파라 해도 그 나라가 처한 상황에서 무슨 조치를 우선해야 할지 판단이 다릅니다.


송나라 성리학자인 정이의 풀이가 전체적 맥락을 잘 꿰었습니다. “함께 같이 배운다는 것은 구할 바를 아는 것이요, 함께 도에 나가간다는 것은 나아갈 바를 아는 것이요, 함께 선다는 것은 뜻을 독실히 하고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권은 저울의 추이니, 물건을 저울질하여 경중을 아는 것이다. 함께 권도를 행한다는 것은 어짊의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하게 함을 이른다.”


하지만 권에 대한 마지막 해석은 달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맹자 이래로 권은 경(經)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경이 보편적 원칙성을 견지하는 것이라면 권은 상황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경이 상(常)이라면 권은 변(變)이다” 같은 해석입니다. 그러나 정호와 정이, 주희 같은 송유들은 “권도(權道)가 곧 상도(常道)”라면서 권의 자율성을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제대로 된 유학자라면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결코 상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성리학적 근본주의에 입각한 해석으로 봐야 합니다.


공자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다원주의자였습니다.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 4 제자와 대화를 나눌 때 저마다 엇갈린 그들의 포부에 지지와 격려를 보여주는 것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심지어 훗날 도가로 대표되는 출세간(出世間)의 포부를 밝힌 증석의 손을 들어주며 “나도 너와 같이하고 싶구나”라고 말했습니다(11편 선진 제26장).


어짊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도(道)만 같다면 저마다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입(立)과 그걸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권(權)에 있어선 자율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메인 테마만 같다면 그걸 어떻게 연주하든 저마다의 개성과 자율에 맡기겠다는 다원주의적 태도를 견지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에선 가(可)보다 미가(未可)를 긍정한 역설의 묘미를 읽어내야 합니다. 물론 공자에게도 넘어선 안 되는 금도는 있었습니다. 춘추시대 여러 나라의 국풍(國風)을 두루 용인했지만 정악에서 벗어난 정나라의 간드러진 음악(鄭聲)만큼은 용인하지 않았듯이.


*프론트 이미지로 쓴 그림은 황중환 작가의 작품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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