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15장
공자가 말했다.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 음악이 바로 잡히고, 아(雅)와 송(頌)이 제자리를 잡았다.”
子曰: “吾自衛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
자왈 오자위반노 연후악정 아송각득기소
시와 음악에 대한 공자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자가 스스로의 업적을 이렇게 자랑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자신이 속한 유(儒) 집단의 전문적 지식이 녹아있는 예악(禮樂)을 국가 통치의 원리로 격상시켰습니다. 예악정치란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예법에 의거해 국가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 잡는 동시에 각종 국가의례에 빠지지 않는 시악(詩樂)의 마음가짐으로 국가 구성원의 화합과 조화를 끌어내는 정치입니다.
원문에선 악(樂)만 등장하지만 이는 곧 ‘시경’에 수록된 305편의 시(詩)를 포괄합니다. 시경에 실린 노래의 장르는 크게 풍(風) 아(雅) 송(頌)으로 분류됩니다. 풍은 지역별 유행가였던 민요, 아는 국가적 의례가 펼쳐질 때 연주되던 노래, 송은 국가 제례 때 연주되던 노래를 말합니다. 그래서 시경을 ‘풍아송’이라고도 부릅니다.
원문에 아와 송만 등장한 것은 노나라의 국가적 의례와 제례 때 연주되는 노래가 그 둘이기 때문입니다. 풍은 사랑노래가 많지만 국가행사 때 불리거나 연주된 아와 송은 교훈적 내용이 담겼습니다. 아악(雅樂)으로 불리는 동아시아 왕실음악의 원류이기도 합니다.
원래 풍아송은 3000곡이 넘었는데 공자와 제자들이 그중에서 최고의 작품만 엄선해 수록한 것이 ‘시삼백(詩三白)’으로 불리게 된 ‘시경’입니다. 시경이 그 노래가사집이라면 이들 노래의 음보 또한 있을 터인데 오늘날에는 유실됐습니다. 이 장의 내용으로 미뤄봤을 때 공자가 그 악보와 연주법을 취합하고 정리했을 공산이 큽니다. 또 그 시점이 죽기 5년 전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온 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는 중국 ‘유학의 아버지’일뿐 아니라 ‘음악의 아버지’이자 ‘문학의 아버지’이기도 한 셈입니다.
원문을 보면 ‘천하주유를 마치고서’라 쓰지 않고 ‘위나라부터 돌아와서(自衛)’라 쓰여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노나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머문 나라가 위나라여서가 아닙니다. 시경의 풍에 해당하는 160편의 노래는 그 노래가 불린 지역 명을 딴 15개의 국풍(國風)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그 국풍 중 패풍(邶風) 19편, 용풍(鄘風) 10편, 위풍(衛風) 10편 도합 3개 국풍 39편의 노래가 공자 시대의 위나라의 영역에서 불린 노래입니다. 전체 국풍의 4분의 1이 사실상 위풍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공자가 채집하고 정리한 시악에 있어서 위나라의 위상이 컸기에 이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풍과 달리 아와 송은 하은주 3대 왕실에 계승되어온 노래 중심으로 엮여 있습니다. 개별 제후국의 노래가 포함돼 있더라도 주제별로 묶어놨기 때문에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노송(魯頌)’이라 하여 노나라에서 불린 4편의 송만을 따로 묶어놨습니다(‘시경’에 실린 40편의 송은 천자국인 주나라에서 불린 주송 21편, 이전 천자국인 은나라(상나라)에서 불린 상송 5편 그리고 노송 4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노나라는 주나라의 예악을 완성한 주공의 봉지였다는 공자의 특별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공자가 편찬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책으로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 고대 중국의 통치기록인 ‘서경’, 음양철학으로 천지만물의 운행 원리를 파헤친 ‘주역(역경)’ 그리고 ‘시경’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공자가 집필에 가장 공들인 책이 ‘춘추’이고, 가장 심도 있게 궁리한 책이 ‘주역’이라면 애정이 가장 담뿍 담긴 책이 ‘시경’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장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