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12장
공자가 병이 깊어지자 자로가 문인들을 공자의 가신처럼 행세하게 했다.
병세가 호전됐을 때 공자가 말했다. “오래됐구나, 중유가 사람을 속이는 것이!. 나는 가신이 없으면서 가신이 있는 체한 것이 됐다. 내가 누구를 속인 것인가? 하늘을 속언 것이다! 또 나는 가신의 수발 속에 죽는 것보단 너희 제자들 수발 속에서 죽는 것이 더 좋다. 또 내 비록 성대한 장례는 못 치른다 해도 길에서 죽는 건 아니지 않느냐?”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자질병 자로사문인위신
病間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병간왈 구의재 유지행사야 무신이위유신 오수기 기천호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 且予縱不得大葬, 予死於道路乎?”
차여여기사어신지수야 무녕사어이삼자지수호 차여종부득대장 여사어도로호
자로는 공자가 72세로 숨지기 한 해 전에 죽었습니다.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귀국한 공자 곁을 지키다가 위(衛)나라 집정대부 공회의 가신이 돼 공자 곁을 떠나 있던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내용은 공자가 귀향한 68세에서 자로가 숨진 71세 사이의 어느 시점일 가능성이 큽니다.
원문의 신(臣)은 가신을 말합니다. 춘추시대 대부 이상의 고관대작은 모두 봉토를 하사 받았고 거기에 소속된 가신을 뒀습니다. 공자도 사구의 직책에 있었으니 대분의 반열에 들 당시엔 가난한 제자인 원헌을 가재(家宰)로 삼는 등 가신을 뒀습니다. 하지만 사직하고 노나라를 떠난 이후 다시 벼슬을 제수받지 못했기에 당연히 봉지와 가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공자가 병석에 누워 장례식까지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맏제자로서 사실상 장례식을 주관해야 할 자로가 꾀를 냈습니다. 한때 대부의 반열에 올랐던 공자에게 가신은 없어도 추종하는 제자가 많았으니 이들을 가신처럼 꾸려서 대부 이상의 고관의 장례식을 뜻하는 ‘대장(大葬)’을 치르려고 계획한 것입니다. 일국의 상경(上卿)이 되고도 남을 스승의 진가를 못 알아본 세상을 향해 여보란 듯 대찬 발길질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병이 차도를 보여 의식을 찾은 공자가 이를 알고 제자들 앞에서 자로를 책망한 것입니다. 그토록 예법을 강조한 공자가 예법에 어긋나는 장례를 치를 뻔했다는 생각에 “하늘을 속이는 짓”이라며 준열하게 꾸짖습니다.
문맥상 자로는 현장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위나라에 있으면서 원격 지휘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공자의 이런 비판에 편승해 자로가 스승의 얼굴에 먹칠할 뻔한 어처구니없는 짓을 획책했다고 손가락질하기 바쁩니다.
공자가 “나를 하늘을 속인 사람으로 만들 셈이냐?”라며 자로를 준엄하게 꾸짖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문장을 보면 “내가 그토록 예에 맞게 살라고 했거늘” 따위의 차가운 논리가 전개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나는 가신들의 품에서 죽는 것보다는 제자들 품에서 죽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다”라며 따뜻한 감성에 호소하는 말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내 장례식이 성대하지 못한다 해도 길바닥에서 죽는 것을 면한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길 터이니 부디 예법에 어긋나는 일은 없게 해 달라”는 부드러운 당부의 말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뜬금없이 등장한 ‘길 위에서 죽는다(死於道路)’는 표현입니다. 왜 이 표현이 등장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큰 뜻을 품고 노나라를 떠난 천하주유를 계속하다가 죽었다면 길 위에서 죽음을 맞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자들에게 풍찬노숙하던 그 어려운 시절을 환기시킨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떠돌이 개처럼 죽을 뻔했던 자신을 고향 땅에서 최후의 안식을 취할 수 있게 해 준 인물이 바로 자로이기 때문입니다. 자로야말로 노나라의 실세인 계강자의 가재로 염유를 파견해 공을 세우게 한 뒤 공자의 귀국 프로젝트가 성사되도록 막후 설계를 한 주역이었습니다.
공자는 제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로를 책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자로 덕에 자신이 노상에서 죽음을 면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死於道路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로에게 “네 덕에 고향땅에서 죽음을 맞게 된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니 분수에 맞지 않는 장례식으로 나를 욕보이는 짓은 하지 말아 달라”는 곡진한 메시지까지 전달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제자는 신하가 군주를 우러러보는 극치의 마음자세로 스승의 장례를 준비하려 합니다. 스승은 그런 제자에게 “나는 신하들 품에 안겨 죽는 군주보다 제자들 품에 안겨 죽은 스승이 더 좋다”면서 사제로 맺은 인연이 더 소중하다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네 덕에 객사할 운명을 면한 것으로 충분히 감읍하고 있으나 더 이상의 과분한 장례는 내 가르침에 어긋나니 자제해주기 바란다”는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이토록 눈물겨운 사제의 정을 읽어내지 못하면서 자로가 배움이 짧아 예법에 어긋나는 얄팍한 속임수를 쓰려했다고 훈수질하기 좋은 메시지만 읽어내는 그 강퍅한 마음이 안타까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