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에게 없는 4가지

9편 자한(子罕) 제4장

by 펭소아

공자는 4가지를 끊어냈다. 멋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함부로 단정하지 않았고, 고집부리지 않았고, 사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자절사 무의 무필 무고 무아


무사(無四)라고 표현했다면 원래부터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끊을 절(絶)’을 써서 절사(絶四)로 표현했으니 원래 있던 것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됩니다. 공자가 타고난 성현이 아니라 덕을 쌓고 도를 닦아 이룬 경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끊어낸 4가지는 모두 에고가 강할 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굳이 4가지로 구별했기에 그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구별해내는 텍스트 이해가 중요합니다. 의(意)는 자의적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럴 경우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불가능해집니다. 필(必)은 함부로 단정하고 당위에 입각한 주장만 늘어놓는 것을 말합니다.송유와 같은 도덕주의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입니다.


고(固)는 자의와 단정, 당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에 부합합니다. 마지막으로 아(我)는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입각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럼 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무의(毋意)는 멋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로 풀어봤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유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필(毋必)은 함부로 단정하지 않았다로 번역해봤습니다. 거기엔 당위론에 입각해 단언하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무고(毋固)는 완고하지 않다, 고루하지 않다는 뜻을 골고루 포함합니다. 그래서 가장 단순하게 ‘고집하지 않는다’로 새겼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아(毋我)는 아집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긴 하지만 그럴 경우 앞의 세 개념과 차별성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심(私心)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로 풀어봤습니다.

도덕주의자인 주희는 무의를 사사로운 뜻이 없다로 새기고, 무아를 사사로운 이기심이 없다로 풀면서 처음과 끝이 수미쌍관 하되 전자는 출발점, 후자는 결과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양자의 차별성이 없어 보입니다. 무의는 자기밖에 모르는 유아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무아는 그것이 켜켜이 쌓여 기득권자가 됐음에도 사심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으로 구별함이 더 좋을 듯합니다. 무의가 초심자의 태도라면 무아는 타자와 나의 구별조차 사라지는 무애(無無礙)와 초탈의 경지를 뜻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 중간에 무필과 무고가 위치합니다. 무필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통념에서 자유로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에 정답이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필이라면 무고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주희와 같은 송유는 전통적 유학의 경전 해석과 통념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선 얼핏 무필해 보입니다. 또 고루하고 고리타분한 경전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심층 해석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무고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치열한 사상투쟁을 통해 형성된 도덕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자학적 해석이 주류가 된 다음에 발생합니다. 주류가 되고 기득권자가 된 이후의 송유는 세상만사를 도덕주의적 당위론에 입각해 풀어낸다는 점에서 무필하지 않게 됩니다. 또 자신들의 경전 해석에서 벗어난 해석을 이단이라고 공격함으로써 무고하지 않게 됩니다.

송유는 결코 유아적 독단론에 빠지진 않았다는 점에서 무의의 실천에 충실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필과 무고는 주자학의 이론을 구축하는 과정에선 한껏 발휘됐을지언정 그를 방어하는 과정에선 거의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사심 없는 삶을 지향했다는 점에선 무아의 실천자라고 할 수 있지만 유교의 수호자라는 사심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시 절반의 실천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군자학에서 절사 과목의 점수가 400점 만점이라 한다면 송유들이 얻은 점수는 250점(무의 100점, 무필 50점, 무고 50점, 무아 50점)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밖에 못 됩니다. 높은 점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사에 대해 여러분 자신이 얼마의 점수를 줄 수 있는지 점수를 매겨서 비교해보시면 결코 낮은 점수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훈련된 군자라 하더라도 평균 70점씩 4개를 합쳐봐야 280점 밖에 안 될 겁니다. 그러니 군자가 못 되는 일반인(소인)의 점수는 당연히 250점에 한참 모자란 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절의 실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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