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전문성이 없다고?

9편 자한(子罕) 제2장

by 펭소아

달항 고을 사람이 말했다. “공자는 대단하기도 하지! 널리 공부했음에도 명성을 확립한 분야가 없으니.”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문하생들에게 말했다. “내 전문분야를 무엇으로 삼을까? 전차를 몰까? 활을 쏠까? 전차를 모는 걸로 해야겠구나.”


達港黨人曰: “大哉孔子! 博學而無所成名.”

달항당인왈 대재공자 박학이무소성명

子聞之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자문지위문제자왈 오하집 집어호 집사호 오집어의



달항(達巷) 마을이 어딘지는 분명하지 않지 않습니다. 공자가 살던 고을은 아닙니다. 공자가 살던 동네는 14편 헌문 제44장에 등장하는 궐당(闕黨)입니다. 당(黨)은 주나라에서 500호 가량이 사는 고을을 말하니 궐당은 그에 해당하는 큰 고을이었을 것이고 포구를 뜻하는 항(巷)이란 표현이 들어간 달항은 그 이웃한 포구마을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 달항 사람의 발언은 두 갈래로 해석됩니다. 공자의 박학다식함을 찬미하면서도 어느 분야로 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라는 해석과 공자를 조롱한 것이란 해석입니다. 전자는 주로 송유의 해석인데 ‘공빠’다운 오독이 아닌가 합니다. 박학다식하다면서 왜 공자하면 딱 떠오르는 전문 분야는 없는 것이냐고 반어적으로 풍자한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를 감아하면 달항은 궐당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고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공자는 그 언중유골을 정확히 읽어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공자학당에서 주로 가르친 육예(六藝)에 초점이 맞춰 응답합니다. 곧 예(禮), 음악(樂), 붓글씨(書), 셈하기(數), 활쏘기(射), 말타기 또는 전차몰기(御)입니다. 공자가 그중에서도 예와 악, 곧 예악(禮樂)에 가장 조예가 깊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달항 고을 사람이 일부러 이를 모른 척했음을 공자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와 거리가 가장 먼 활쏘기와 전차몰기를 거론하며 해학적으로 받아친 것이니 반어법에 반어법으로 맞대응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공자는 어떤 한 분야를 파고드는 전문적 지식인이 아니라 종합적 지식인인데 세간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못한다고 풀어내곤 합니다. 총론으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공자는 예(禮) 분야 전문가로 출발해 사(史)와 문(文)에 통달했고 이를 토대로 수제의 덕과 치평의 도를 결합해 ‘어진 정치’를 구현할 군자를 키우는 군자학을 창학했습니다. 육예가 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초반이라면 인지용(仁知勇)의 리더십 함양은 고급반에 해당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정리한 안드로니코스는 자연학인 ‘피시카(phisica)’를 먼저 배우고나서 그 위에(메타) 배우는 것이라 하여 형이상학을 ‘메타피시카(metaphisica)’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를 군자학에 적용한다면 먼저 육예를 배우고 나서 심화학습에 나서는 것이라는 점에서 ‘메타육예’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달항 고을 사람은 겨우 군자학의 초급반인 육예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그 눈높이에 맞춰 농반진반의 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만일 달항 고을 사람이 군자학의 고급반까지 꿰고 있었다면 “공자는 대단도 하지! 박학다식함으로 군자학을 벼려냈지만 정작 자신은 쓰임을 받지 못하니 군자학은 뭐에 쓴단 말인가”라고 꼬집었을 것입니다. 그러 공자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답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1
매거진의 이전글임금에게 몇 번 절하냐가 중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