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1장
공자가 이익을 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니 사명감과 함께 하고 어짊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子罕言利, 與命與仁.
자한언리 여명여인
많은 주석서는 원문의 여(與)를 접속사 and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과 더불어 천명과 어짊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라고 풉니다. 송대 학자인 사승조(史繩祖)만이 여를 “나는 증점과 함께 하겠노라(11편 ’선진‘ 25장)”나 “나는 그런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7편 제11장)처럼 ’함께 하다‘나 ‘허여하다’로 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 현대사상가인 리쩌허우(李澤厚)도 이를 지지했습니다.
실제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가 명(命)과 특히 어짊(仁)에 대해선 제법 많은 말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주희 같은 성리학자는 제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에 한해 그것도 삼가는 자세로 말한 것이기에 똑같이 ‘드물게 말했다(罕言)’에 걸린다고 풀이합니다. 이 경우 이익과 어짊을 같은 반열에 놓고 말하는 꼴이 되니 더 우스워집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성리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이익을 탐하는 것을 경멸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되풀이해 말하지만 소인은 소인배라는 뜻이 아니라 보통사람으로 새기는 것이 맞습니다. “소인은 이익에 밝다(小人喩於利․4편 리인 제16장)”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익에 밝다고 풀어야 합니다.
군자는 그런 보통사람을 이끄는 리더가 될 사람이니 소수정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소수정예의 군자는 사명감을 지녀야 하며 어짊을 실천해야 합니다. 당연히 공평무사(公平無私)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익을 탐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에 따르면 이 장의 뜻은 단순 명쾌해집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 드물게 말한 이유는 군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기에, 사명감을 지니고 어짊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命을 보통은 시대정신으로 풀이합니다만 여기서는 사명감으로 풀어봤습니다.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