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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으로 스며든 경이

경북 영주 실내수영장 및 대한복싱훈련장

by 펭소아

● 장소 경북 영주시 가흥동

● 준공 2019년 3월

● 설계 숨비건축사무소(김수영)·핸드플러스(김준성·박영일)

● 수상 2019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2016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영주 실내수영장)




영주 실내수영장(왼쪽 미색)과 대한 복싱룬련장(오른쪽 검은색)의 외경 ⓒ포스트픽


“2차 세계대전 후에 우리는 전 세계 도시에 넓은 흠집을 냈다. 우리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교통 동맥을 뚫었고, 그 기능과 모양, 크기, 재료, 색깔이 기존의 도시 환경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건물들을 세웠다. 따라서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것, 긍정적인 부분은 유지하고 도시환경의 필요한 접착력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오늘날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가 옛 도시를 산책하면서 그렇게 찬양하는 지역공동체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86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öhm)의 말이다. 빔은 2021년 1월 23일로 만 101세가 됐다. 중국계 미국 건축가 아이 엠 페이(貝聿銘·1983년 수상자)가 2019년 향년 102세로 숨진 이후 생존 건축가 중 최고령 프리츠커 수상자다(프리츠커 수상자 중 역대 최고령자는 2012년 만 104세 11개월로 숨진 브라질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이다). 장수만 누린 게 아니다. 2012년 사별한 아내와 사이에 아들을 넷이나 뒀고 그중 셋이 건축가가 됐다. 그렇게 다복했던 뵘은 기능과 디자인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건축에 조용히 반기를 든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건축은 ‘연결고리 만들기’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관심을 부정하거나 미화하지 않으면서 건축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그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좋은 건축’의 핵심이 담겨 있다. 좋은 건축은 웅장하고 화려한 기념비적 건축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맞춤형의 예쁘고 신박한 건축도 아니다. 공간(환경) 시간(역사) 인간(지역주민)이 어우러져서 자연스럽게 풍경이 되는 건축이다.



사진11_왼쪽 주택가와 차로를 사이에 두고 스포츠 콤플렉스가 있다. 황토책 천정가 채광창이 보이는 건축이 수영장이고 그 위로 천정에 짙은 회색구조물이 보이는 건축이 복싱훈련장이다..jpg 왼편 주택가에서 차도 건너에 스포츠 콤플렉스가 있다. 황토색 옥상과 채광창이 보이는 아래 건축이 수영장, 그 위로 짙은 회색 구조물이 설치된 건축이 복싱훈련장이다. ⓒ포스트픽



3년 연속 공공건축상 휩쓴 영주시



사진2_메인 가능하면 사진1과 나란히_대한복싱훈련장 외부. 산책로와 이어지는 계단이 설치돼 있다. 핸드플러스 제공.jpg 대한복싱훈련장의 외부 계단. 산책로를 따라서 수영장과 복싱훈련장이 공유하는 마당까지 연결된다. 훈련장은 그 지하에 설치돼 있다. 핸드플러스 제공



뵘이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고 30년이 넘게 지났건만 한국에선 여전히 그에 반하는 건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별로 자기네 상징물을 들입다 높고 크게만 짓겠다는 돌림병이 번지고 있다. 100m 높이의 ‘이순신 타원’를 짓겠다는 경남 창원시와 산꼭대기에 33m 높이의 ‘태권 V 동상’을 짓겠다는 전북 무주군이 대표적이다. 지자체 단체장이나 담당 공무원의 건축 마인드가 얼마나 참담한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가뭄에 전답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만 들리나 했는데 단비 같은 소식이 도착했다. 경북 영주시의 공공건축이 3년 연속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희소식이다. 1980년대 인구 20만이 넘던 영주시는 2000년대 들어 인구가 반 토막이 났다. 어디 영주만 그럴까. 광역시를 제외하면 수도권 외의 도시는 대부분 급격히 인구가 줄고 있다. 그 해법을 고민하던 영주시의 선택은 좋은 건축이 많은 도시였다.


2009년 국내 지자체 최초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영주시의 공공건축 발주와 설계공모 단계에서부터 안목 있는 건축가가 참여해 비용 낭비도 줄이면서 미학적 가치도 높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였다. 공공건축가 위촉이 좋은 반응을 얻자 2015년부터는 아예 '도시건축관리단'이란 상설조직을 만들었다. 공공건축가로 위촉된 3인 중 1명은 지역총괄계획가로, 다른 2명은 개별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사업총괄계획가의 임무를 맡기고 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1996년~2006년 전북 무주군에서 30여 개의 공공건축 설계를 도맡았던 고 정기용 건축가의 선례를 시스템으로 정착화한 것이다.


인구 10만 소도시의 공공건축이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겠지만 결과는 창대했다. 3개 철로가 교차하는 바람에 도심 속 맹지(盲地)가 된 영주시 삼각지에 세운 노인복지관(2017년)과 장애인복지관(2018년)이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2019년엔 영주시 스포츠 콤플렉스 내에 세운 실내수영장과 대한복싱훈련장 두 곳이 한꺼번에 같은 상을 수상하며 3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공공건축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예비_수영장 외부 계단.jpg 수영장의 외부 계단. 외부산책로에서 수영장과 복식연습장이 공유하는 마당으로 이어진다. ⓒ포스트픽



섬세함과 광활함의 파드되(2인무)



사진_1 메인 가능하면 사진2와 나린히_영주 실내 수영장 내부 ⓒ포스트픽.jpg 7m 높이의 실내 수영장. 천정의 야외채광창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의 일부를 콘크리트 루버가 차단해준다. ⓒ포스트픽


수영장과 복싱 훈련장은 2층짜리 건축이다. 외관만 보면 김수근과 더불어 산업화 시기 한국건축계의 쌍두마차로 불린 김중업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가느다란 열주가 수직으로 도열한 특징을 제외하면 건축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 보이는 기능주의적 외형이다.


외형만 엇비슷한 게 아니다. 본래 두 단독 건축의 부지는 높이가 10m나 되는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곳이다. 그 외벽 밖으로 5층 높이의 주택단지가 둘러싸고 있다. 주거공간과 운동공간이 높다란 콘크리트벽으로 단절돼 있었던 것. 수영장 설계를 맡은 김수영, 복싱훈련장 설계를 맡은 김준성·박영일 세 건축가는 그 단절성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주택단지에 맞추기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전략을 택했다.


지반을 확 낮추면서 가로변과 맞닿은 옥상에 해당하는 공간을 통로화했다. 그래서 주택단지에서 나와 산책하듯 걷다보면 두 체육관이 공유하는 마당까지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수영장이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주민의 접근을 유도했다면, 복싱훈련장은 건축의 1층 한복판에 해당하는 공간에 통 넓은 석조 계단을 설치해 주민의 휴식공간을 제공했다. 벽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마술 같은 설계였다.


여기까지는 ‘같이’다. 개별 건축 내부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개성을 체감하게 된다. 수영장이 섬세함으로 승부한다면, 복싱훈련장은 광활함으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사진8_복싱훈련장으로 내려가는 2층 계단에 설치된 캐노피 ⓒ포스트픽.jpg 복싱훈련장으로 내려가는 2층 계단에 설치된 캐노피(차양). 실내수영장 천장의 콘크리트 루버 구조와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포스트픽





물, 빛, 소리의 삼박자 갖춘 수영장



사진5-영주 수영장 외경.jpg 영주 수영장 외관. 김중업 스타일 열주가 인상적이다. ⓒ포스트픽


수영장은 2층에 탈의실을 설치하고 긴 통로를 통해 지상 1층에 위치한 풀로 접근하게 했다. 수영장 외에도 다목적 실내체육관과 피트니스센터까지 다양한 주민 체육시설을 품고 가야 했기 때문에 이뤄진 선택이다. 핵심은 역시 수영장이었는데 물, 빛, 소리가 어우러진 환상의 공간이었다.


탈의실에서 풀로 내려가는 통로에 설치된 2m 높이의 가림막은 청각과 후각으로 수영장 하면 떠오르는 흥분을 안겨준다. 그러다 1층 수영장에 내려섰을 때 만나는 풍광은 잠깐 현기증이 일 정도의 감동을 안겨준다. 아이들이 물에서 텀벙거리는 소리, 7m 높이 천장에 설치된 6개의 자연채광창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콘크리트 루버(일렬로 설치된 격자형 차광판)를 통과한 그 햇빛이 일렁이는 물결…. 게다가 나무가 심어진 중정과 잔디밭으로 연결되는 유리창까지 접하게 되면 야외수영장의 느낌까지 만끽할 수 있다.


현장 안내를 맡은 정신구 영주시 주무관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감히 세계 최고의 수영장이라고 자부합니다.” 허황된 말로 들리지 않았다. 풀장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음미해볼 수 있도록 비범함이 돋보였다. 다만 수영장 운영자들이 설계자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블라인더로 자연 채광을 막고 지하 수영장에나 있을 법한 인공 조명등을 설치해버린 것이다. 빛과 물, 소리 그리고 자연과 인간까지 어우러지는 수영장이란 모토에 걸맞은 운영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사진6_7m 높이의 실내 수영장. 천정의 야외채광창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의 일부를 콘크리트 루버가 차단해준다. ⓒ포스트픽.jpg 영주 실내 수영장 내부. ⓒ포스트픽



평범 밑에 비범을 감춘 복싱훈련장



사진8_복싱장 외경 ⓒ포스트픽.jpg 복싱훈련장 외경. 역시 2층에서 김중업 스타일의 열주 형식이 발견된다. ⓒ포스트픽


복싱훈련장은 지하와 1층에 걸쳐 지어졌는데 우선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된다. 지하 1층의 제1훈련장과 1층의 제2훈련장은 가운데 기둥 없이 거대한 콘크리트 트러스(직선부재를 연결해 삼각형을 이루도록 하는 골조 구조)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바닥부터 천정까지 10m 안팎의 높이가 된다. 위에서 보면 ㄷ자 형태로 생긴 훈련장의 가운데 빈 공간의 지상공간에는 석조 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지하의 대형 콘크리트 트러스가 이를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규모 복싱훈련장은 서울 태릉과 충북진천에 있는 국가대표 훈련소에나 가야 볼 수 있다는데 웅장함만 놓고 본다면 영주가 최고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대한 아레나의 공간 역시 3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채광 효과가 상당하다. 마치 빛으로 충만한 저 높은 곳을 등불 삼아 이 낮은 곳에서 피와 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듯했다.


ㄷ자 중 맨 위의 가로축을 이루는 2층에는 복싱선수들의 기숙사가 마련돼 있다. 10개의 방마다 2개의 침대와 2명이 바닥에서 잘 수 있는 다락방 그리고 작은 냉장고가 설치돼 있었다. 최대 40명이 합숙하면서 복싱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사각의 링 안 매트 위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이 이를 말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수영장이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이라면 복싱훈련장은 어른의 피와 땀, 신음이 스며드는 공간이었다. 감탄할 대목은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두 건축이 주민들의 생활공간 속으로 스며들면서 멋진 앙상블을 빚어낸 점에 있었다. 건축 본연의 생명력에 충만하면서도 외부환경과의 조화를 위해 이를 속살 깊이 감춰둔 두 건축을 보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체육관이 공유하는 마당으로 내려오는 석조 게단 아래 설치된 복싱훈련장의 거대한 콘크리트 트러스. ⓒ포스트픽



사진11_복싱훈련장을 받치는 2개의 콘크리트 트러스 구조. 핸드플러스 제공.jpg 복싱훈련장을 떠받치는 2개의 콘크리트 트러스 구조. 핸드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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