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소문 역사공원 및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 장소 서울 중구 칠패로
● 준공 2019년 6월
● 설계 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윤승현) 보이드 아키텍트 건축사사무소(이규상) 레스건축(우준승)
● 수상 2019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2019 건축문화대상 본상
노숙자의 둥지였던 서울 서소문 공원이 2019년 6월 새 단장을 하고 문을 열었다. 울창한 나무와 잔디로 둘러싸인 공원은 도심 속 산책로로 인근 주민은 물론 점심시간대 직장인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그 산책로에 붉은색 벽돌담이 군데군데 서있다. 담벼락을 따라 정말 온갖 종류의 장미꽃이 심어져 있다. 그래서 처음엔 조경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해였다.
공원 내 3곳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 ‘하늘광장’에 들어선 뒤야 비로소 그 벽돌담의 실체를 깨달았다. 지하 3층부터 지상 1층 3m 담벼락까지 무려 18m 높이의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33m×33m 정방형 공간으로 푸르른 하늘이 넘실거리며 쏟아져 들어왔다.
1996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천사 성모 성당’을 짓고 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빛을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회복시키려고 애쓰는 주인공으로 이해한다. 빛이야말로 우리가 신성하다고 부르는 것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지하 깊은 곳 어둠의 공간을 예상했다가 하늘빛이 대책 없이 쏟아지는 공간을 만날 때 느낌을 뭐라 해야 할까.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와 독일의 에마뉘엘 칸트 이후의 미학자들이 ‘숭고(the sublime)’라고 부르는 감정이다. 이는 비례와 조화, 균형과 파격에서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beauty)’과 다르다. 숭고는 압도적으로 거대하거나 무한한 것 앞에서 한없이 초라함과 더불어 ‘나보다 더 크고 나도 어쩔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경탄과 경외의 마음을 품게 하는 체험이다.
고대인은 이를 종교적 신성 체험과 그로 인한 마음의 정화와 연결시켰고, 20세기인은 스펙터클의 재현을 통한 대중 선동과 동원의 수단으로 써먹었다. ‘하늘광장’에서 느껴지는 숭고미는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종교·정치·경제가 배제된 순수한 형태에 더 가깝다. 숭배와 열광의 느낌보다는 슬픔과 경건의 느낌이 강하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그 광장의 한 편에 철도용 침목을 재활용해 설치된 미술품 ‘서 있는 사람들’(정현 작)도 그런 숭고미에 조응한다. 하늘을 향해 서있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찬양보다는 비통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늘광장 맞은편엔 또 다른 숭고미를 체험할 실내공간이 있다. 땅속 14m 깊은 어둠을 품은 ‘콘솔레이션(Consolation) 홀’이다. 영어로 위안의 공간이란 뜻이다. 사람들이 오갈 수 있게 바닥으로부터 2m가량을 띄워놓고 25m×25m의 사방을 검은색 철판으로 둘러싼 이 공간은 ‘하늘광장’과 반대로 깊은 어둠 속에 침잠하게 해 준다. 그 어둠에 빛을 밝히는 것은 지상의 채광창으로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는 희미한 ‘빛의 우물’ 뿐이다. 사방 벽에 명상적 느낌의 슬라이드 사진과 은은한 음악이 흐르지만 내면 깊숙이 침잠하게 해주는 공간이란 점은 같다.
휴식과 평화를 담은 안온한 지상공간으로서 공원과 숭고와 추모가 담긴 지하공간으로서 박물관. 그 둘을 넘나들다 보면 절로 묻게 된다. 도대체 이곳이 무슨 역사를 품고 있기에….
한양은 본디 4대문과 4소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동서남북에 위치한 4대문이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다. 그 사이로 다시 4개의 소문이 있었으니 동북의 혜화문(속칭 동소문), 남서의 소의문(속칭 서소문), 동남의 광희문(속칭 시구문), 서북의 창의문(속칭 자하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슬픈 문이 소의문이다.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린 광희문과 더불어 궁궐에서 시체가 나갈 때 이용된 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의문은 그 바로 앞에 사형수의 처형장이 있었던 데다 돈의문과 함께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게 된 문이기도 하다.
특히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를 거치며 천주교도 100여 명이 처형된 곳이다. 천주교 사상 가장 많은 성인(44명)을 배출한 이곳에 1984년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졌고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참배한 성지가 됐다. 하지만 그 현양탑 남쪽으로 길게 약 2만1100㎡(6400평) 규모로 조성된 공원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주로 노숙자 공간으로 각인돼 기피 장소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서울시와 천주교가 손을 잡고 700억 규모를 투자해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2014년 현상공모를 통해 당선한 현 건축설계의 모토는 ‘지상은 녹지공간으로, 지하는 추모공간으로’였다. 처형장에서 희생된 순교자들의 피가 스민 땅 속에 이를 받들고 기리는 성배를 형상화하자는 구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1996년 공원 지하에 지어진 지하 4층 깊이의 공영주차장(900대 차량 수용)에서 230대 주차공간을 제외하고 전시관 도서관 소성당 강연장이 들어선 복합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가톨릭 성지라는 징표 하면 떠오르는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 대리석 열주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지상에선 앞서 언급한 현양탑과 칼 모양으로 변형된 십자가 조각품만 눈에 띌 뿐이다. 지하 박물관에서도 십자가는 300석 규모의 소성당(‘성 정하상 기념 경당’) 내 설교대에 그려진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 이곳에서 미사가 진행될 때는 청동 회전문을 닫아둔다.
설계에 참여한 3명의 건축가의 좌장인 윤승현 인터커드 대표는 “범종교적 신성함을 담아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지역적 특징을 적극 수용하되 그 어원에 ‘보편되다’라는 뜻을 지닌 가톨릭의 장점을 살리고, 사람들 속에 내장된 신성함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 그래서 벽돌과 콘크리트, 나무와 돌 같이 친숙한 건축자재를 선택했고, 누구나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게 개방적이면서 모듈형 단위로 구성된 전시공간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 순간 지상의 공원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자 형상의 예수 동상이 떠올랐다. 이곳이 순교자와 노숙자 같은 ‘호모 사케르’의 공간임을 기억하는 것 그러면서도 그 어둠 속에서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신성 아닐까. 198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ouis Barragán)은 “신을 향한 욕망이 없다면, 우리 행성은 흉하고 보잘것없는 황야에 불과할 것”이란 말을 남겼다. 서울의 가장 슬픈 문 앞에 세워진 이 건축이 다시 이를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