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태백(泰伯) 제15장
공자가 말했다. “악사장 지(摯)가 노래를 시작해 ‘관저’의 마지막 합주 대목에 이르면 충만하고 성대한 선율이 온 귀 가득 넘실거리는구나.“
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
자왈 사지지시 관저지란 양양호영이재
노나라는 주나라의 예악을 완성한 주공의 자손에게 봉분된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주나라 예악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공자는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지(摯)는 노나라 궁중 악사의 총책임자였으니 그 음악의 정수를 터득하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삼환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노소공의 궁중 쿠데타의 실패 후 노소공을 뒤따라 제나라로 망명합니다. 그와 함께 노나라의 궁중 악사들도 뿔뿔이 흩어집니다(18편 미자 제9장).
관저(關雎)는 공자가 선집한 ‘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노래입니다. 그만큼 음악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경에 실린 노래는 당시 모두 음악 반주에 맞춰 노래됐습니다. 그에 대한 연구서에 따르면 누군가가 노래를 선창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이를 시(始)라 하고, 뒤로 가면서 악기가 연주되다 마지막엔 합주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이를 난(亂)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주희는 이 장의 첫대목을 ‘악사장 지가 악공을 처음 시작했을 때’로 새겼습니다. 그보다는 ‘악사장 지가 노래를 시작해’로 새기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악공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아니라 악사장의 지위에 올라 최전성기 때의 완성도 높은 음악을 제대로 음미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공자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공자가 악사장 지의 연주를 높게 평가한 발언이 왜 ‘논어’에 편입돼야 했던 걸까요? 주나라와 노나라로 이어지는 악(樂)의 정통성을 계승한 지가 제나라로 망명한 뒤 그에 필적할 정도로 악에 정통한 인물이 공자밖에 없음을 드러내기 위함 아닐까요?
지가 제나라로 망명한 노정공 시대 공자 역시 제나라로 건너가 도피성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그때 순임금이 직접 지었다는 ‘소(韶)’라는 곡을 듣고 심취해 석 달간 고기 맛을 잊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7편 '술이' 제13편). 또 자신이 천하주유를 마치고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 후 음악이 바로 잡히고 시경에 수록된 아(雅)와 송(頌)이 제자리를 잡았다고 천명하는 대목도 있습니다(9편 '자한' 제15장).
이를 종합해보면 지가 제나라로 망명한 뒤 노나라 음악의 정수를 계승한 사람도 공자요, 제나라와 위나라에서 그 모자란 점을 보완한 사람도 공자라는 메시지가 또렷해집니다. 이 장의 내용은 이를 보완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자가 노나라 음악의 진정한 마이스터였던 지의 노래와 연주의 진가를 꿰뚫어 본 지음(知音)임을 강조함으로써 이후 노나라 음악을 재정비하고 ‘시경’에 수록될 노래를 선별하기에 충분한 정통성을 갖췄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