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와 학(學) 그리고 믿음(信)

8편 태백(泰伯) 제1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굳은 신념을 갖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를 닦는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물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서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럽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럽다.”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자왈 독신호학 수사선도 위방불입 난방불거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도에 대해 공자가 견지한 삶의 태도를 4개 단락으로 요약했습니다. 4개 단락은 대구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첫 단락의 핵심은 호학(好學)과 선도(善道)입니다. 선도에 대해선 여러 설명이 있지만 ‘도를 닦는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다산 정약용의 해석을 취했습니다. 선도와 호학이 동일한 구조를 취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그 둘은 동일한 뜻을 갖기 때문입니다.

도는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사이언스(science)입니다. 천하 만물의 원리와 이치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에 정통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기본 생각이었습니다. 도가의 신선이나 불가의 선승이 하던 도닦음이 아니라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문헌을 읽고, 전문가에게도 물어보고, 스스로 열심히 궁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선도를 하려면 반드시 호학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신(篤信)과 수사(守死)를 호학, 선도와 대등한 개념으로 봐선 안 됩니다. 호학하고 선도함에 있어서 그 자세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신은 “도를 믿지만 두텁지 않다면(信道不篤)‘이란 자장의 발언(19편 자장 제2장)과 궤를 같이합니다. 만물이 돌아가는 원리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은 그걸 배워서 터득하겠다는 믿음과 공명합니다. 수사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발언(4편 이인 제8장)과 공명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배운다면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자세로 배우고 또 연마하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락은 첫 번째 단락에서 천명한 원칙을 나라(邦)와 천하(天下)에 적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는 제후국이요, 천하는 제후국을 망라한 천자국을 뜻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개별 국가와 세계로 확대해도 무방합니다. 나라나 천하에 도가 없다는 뜻을 전통적으로는 성군이 통치하지 않을 때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성군이 통치하던 시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보다는 폭군이 통치하는 때 정도로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살던 시대 그가 살던 노나라나 천하였던 주나라가 성군의 통치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공자는 나이 오십에 관직에 진출한 이후 노나라는 물론 천하를 떠돌며 자신의 기용을 호소하고 다녔지 자취를 감추는 법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나라의 제후가 혼정을 펼치거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제후는 멀쩡해도 권신들이 설쳐대는 것을 보면 희망을 접고 다른 나라로 떠났습니다. 위방(危邦)은 현재 그러한 나라이고 난방(亂邦)은 그러한 조짐을 보이는 나라를 말합니다.

네 번째 단락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평가와 관련돼 있습니다. 나라의 도가 떨어지지 않으면, 즉 정치가 폭정으로 치닫지 않을 때에는 부하고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 부끄럽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 이 땅에 살던 사람들 대다수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생각에 공명했기에 관직에 진출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여긴 조선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 중에서 그럼에도 일제 치하에서 작위를 받고 군수나 판사를 지낸 분들이 있습니다.

훗날 ‘꺼삐딴 리’로 통칭되는 이들의 원조가 바로 친러파였다가 친미파를 거쳐 친일파가 된 이완용입니다. 꺼삐딴이 영어 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카피탄의 와전된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완용이야말로 꺼삐딴 리의 원형이 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완용을 싫어하는 데는 그가 단순히 친일파 매국노라는 것 이상의 심층적 원인도 작용합니다. 공자를 숭배한다던 사람이 그 가르침을 배신했기 때문이며 “굳은 신념을 갖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를 닦는다”는 공자의 제1원칙을 벗어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천재적 머리를 갖고 태어나 한학에도 정통하고 러시아어, 영어, 일본어를 마스터하며 호학의 삶을 살았다지만 세상의 도리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굳건한 신념이 없으면 위군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도에 대해 논한 4개의 단락이 덕(德)의 논리로 전환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도리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굳건한 신념은 도가 아니라 덕(德)이기 때문입니다. 도를 얘기할 때 호학과 선도의 보조 개념이었던 독신과 수사는 이렇게 덕의 차원에 들어서게 됐을 때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게 됩니다. 군자학이 도와 덕의 변증법적 결합이라며 어짊(仁)이 그 둘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상태라고 제가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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