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29장
공자가 말했다. “어짊이 멀리 있단 말인가? 내가 어질어지고자 하면 어짊이 온다.”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자왈 인원호재 아욕인 사인지의
맹자와 주자는 어짊(仁)을 덕의 일종으로 봤습니다. 어짊은 사람의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덕의 하나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바로 발현될 수 있다는 이 장의 내용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본 술이 편 제33장에서 “거룩함과 어짊을 내 어찌 감히 바라겠는가?”라고 했던 공자의 발언과 배치됩니다. 어질어지기를 바라면 다가오는 것인데 왜 감히 바랄 수 없는 것이기도 한 걸까요?
제 해석은 어짊이 덕과 도가 결합한 상태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어짊은 어떨 땐 덕으로 보이고, 어떨 땐 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도를 앞세운 어짊은 33장의 내용처럼 감히 바랄 수 없는 면모를 지닙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4편 이인 제8장)라고 할 만큼 득도는 요원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덕을 앞세운 어짊은 이 장의 내용처럼 내면의 수양을 쌓다 보면 어느새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성외왕(內聖外王)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장자’의 마지막 장인 제33장 ‘천하’에 등장합니다. ‘안으론 성인, 밖으론 제왕의 도가 어두워져 밝게 드러나지 못한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 앞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 현인과 성인이 모습을 감췄고, 도와 덕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해 천하 사람들이 그 일부만 알고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제자백가는 이런 도와 덕의 본체를 꿰지 못하고 파편적 지식만 아는 일곡지사(一曲之士)에 불과하다는 비판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전체 맥락을 감안하면 내성은 수제의 덕을 완성하는 것이고 외왕은 치평의 도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풀어낼 수 있습니다.
유가인 맹자나 주자보다 도가 계열의 장자가 공자 가르침의 핵심을 꿰고 있는 것입니다. 도와 덕이 하나로 통일된 경지를 지칭하는 공자의 용어가 곧 인입니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면 내성과 외왕이 하나 된 경지입니다. 이를 좀 더 응용하면 내성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외왕과 통하게 되고 외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내성과 통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성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임금이 순이라면 외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임금이 요입니다. 그리고 내성과 외왕을 병행한 임금은 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공자의 발언은 바로 내성의 지극함을 통해 어짊을 이루고자 하는 제자들을 격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33장의 발언은 외왕의 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자는 나이 오십에 출사한 이후 계속해 외왕의 길을 모색했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중용되지 못했기에 외왕의 도를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외왕지도를 내 어찌 감히 바라겠느냐고 말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