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요?

7편 술이(述而) 제14장

by 펭소아

염유가 자공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위나라 군주를 도와주실까?” 자공이 말했다. “그래. 내가 한번 여쭤보겠네.”

자공이 안에 들어가 선생님께 여쭈었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옛날의 현인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공자가 답했다. “어짊을 구해 그를 이뤘으니 무슨 후회가 있었겠느냐?”

자공이 물러나와 염유에게 말했다. “스승님은 위나라 군주를 돕지 않으실 걸세”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염유왈 부자위위군호 자공왈 낙 오장문지

入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입왈 백이숙제 하인야 왈 고지현인야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왈 원호 왈 구인이득인 우하원

出曰: “夫子不爲也.”

출왈 부자불위야



공자가 정계에 진출한 이후 죽을 때까지 위나라 제후는 3명이 있었습니다. 위령공(희원)-위출공(희첩)-위장공(희괴외)입니다. 원래 위령공의 아들이 위장공, 손자가 위출공인데 궁중 분란으로 계승 순서가 뒤바뀌는 콩가루 사태가 벌어진 결과였습니다.


천하주유 당시 공자는 위나라에 가장 오래 머물며 위령공이 발탁해주기를 기다렸으나 결국 무산됐습니다. 위령공이 입질만 했지 챔질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위령공과 그의 부인 남자(南子)의 황음무도함에 질려서 공자가 자발적으로 떠난 점도 있습니다. 그 위령공이 천하주유 4년차(기원전 494년)에 숨을 거둡니다.


원래 위령공의 세자는 괴외였는데 그 2년 전 새어머니인 남자의 바람기로 인해 조롱거리가 된 것에 격분해 남자를 시해하려 했던 것이 들통 나 국외로 추방됐습니다. 그로 인해 괴외의 아들이던 첩이 본디 아버지가 물려받을 제후의 자리에 먼저 올라 위출공이 된 것입니다. 위출공이 재위하던 시기 공자는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괴외는 아들에게 뺏긴 군주의 자리를 찾기 위해 호심탐탐 궁중 쿠데타를 기도하다 두 번만에 결국 아들을 몰아내고 위장공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 위나라에서 벼슬하던 자로가 사실상 위출공 편에 섰다가 목숨을 잃습니다. 허나 위장공은 재위 3년을 못 지키고 공자가 죽던 해 시해당하고 다시 2년 뒤 위출공이 위나라로 돌아와 군주의 자리에 오릅니다.


주희를 비롯한 대다수 주석가들은 이 장의 대화가 오간 시점을 공자가 노나라로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위나라에 머물던 시점으로 특정합니다. 본문의 위공은 위출공을 말하며 아버지 괴외로부터 제후의 지위를 빼앗길 위험에 처했을 때 위출공을 도울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제자들 간에 설왕설래가 이뤄질 때라는 것입니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때 고죽국의 공자로 서로 왕위를 양보하려 몸을 숨겼고 주무왕이 은나라를 친 것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쳤다 하여 주나라의 봉직을 받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곡기를 거부해 굶어 죽었다는 전설적 형제입니다. 공자가 이들을 높이 평가한 것은 요순의 선양의 전통을 실천한 지식인이라는 점이 가장 크지만 어짊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한 점을 높이 평가한 점도 있습니다.


자공이 백이와 숙제를 거명한 이유가 형제로서 군주의 자리를 양보했다는 점에서 부자 사이면서 군주의 자리를 양보할 줄 모르는 위장공과 위출공 부자와 비견된다고 생각해서라고 주희는 봤습니다. 하물며 형제간의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아름답게 여긴 공자가 부자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을 좋게 볼 리 없다는 생각을 확인코자 에둘러 물어본 것이란 해석입니다.


그럴듯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장의 핵심은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을까요?”라는 자공의 질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리를 버리고 원칙을 추구한 그들이 추앙할만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들은 한 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겠느냐는 질문을 통해 과연 공자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실리를 외면하고 명분을 추구할 것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원문의 怨은 원망할 원이지만 문맥상 여기선 '후회하다'로 새기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꿰뚫어 본 제자만이 염화미소를 짓는 게 아닙니다. 제자 질문의 의도를 꿰뚫어 본 스승도 염화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처음 백이숙제에 대한 질문에 의아했을 공자도 두 번째 질문에 자공의 속내를 읽어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학문과 삶이 어짊을 구하고 실천하는 하나로 귀결됨을 거듭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많이 배우고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 사람(15편 ‘위령공’ 제3장)이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 하나가 곧 군자학 최고의 덕목인 어짊인 것입니다.


자공 역시 이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다만 과연 13년에 걸친 천하주유가 별무 소득으로 끝나려는 순간에도 공자가 과연 아무런 후회 없이 원칙을 견지할 것인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연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느냐 물은 것이고 공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다고 내가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자공은 그 답을 듣고 가슴 한가득 자부심과 감동을 안고 실리파인 염유로선 좀처럼 납득키 어려울 “No"라는 답을 건네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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