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10장
공자가 안연에게 말했다. “등용해주면 실행에 옮기고, 등용해주지 않으면 감추는 것, 이는 오직 나와 너만이 할 수 있으리라.”
자로가 말했다. “스승님이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걸어서 황하를 건너다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사람과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임무를 맡으면 두려워할 줄 알고, 계책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기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반드시 함께할 것이다.”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자위안연왈 용지즉행 사지즉장 유아여이유시부
子路曰: “子行三軍則誰與?”
자로왈 자행삼군즉수여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자왈 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공자가 애제자 안연이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극찬합니다. 샘이 난 자로가 “딴 건 몰라도 군사작전을 수행할 때는 저와 함께 하실 거죠?”라는 속내의 질문을 던집니다. 원문의 삼군(三軍)은 육해공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만2500명을 1군으로 했을 때 제후가 이끌 수 있는 최대 병력수(3만7500명)를 말합니다.
공자는 일부러 자로가 취약한 '시경'의 시 구절을 인용하며 짓궂게 골려먹습니다. “무모한 사람이 아니라 신중하고 치밀한 사람과 함께 할 것”이란 말은 곧 “자로 너는 너무 즉흥적이고 무모해 군사작전에서도 써먹을 수가 없어”와 같습니다.
유머러스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눈에는 공자의 지청구에 뒤통수를 긁으며 “스승님도 참”이라며 머쓱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자로의 얼굴까지 그려집니다. 그럼에도 공자를 성인군자로 떠받드는 사람들 눈에는 자로를 준열히 꾸짖는 장면으로만 보인 듯합니다.
안연에 대한 발언은 '용행사장(用行舍藏)'으로 요약됩니다. 그 핵심은 행(行)과 장(藏)에 있습니다. '실행한다'와 '감춘다'는 뜻으로 모두 동사인데 목적어가 빠져 있습니다. 성리학자들은 그 목적어를 다르게 설정합니다. 행하다의 목적어를 도(道)로 새기고, 감춘다의 목적어는 자기 자신으로.
저는 문맥상 그 목적어가 같아야 하며 ‘군자학의 비의(秘意)’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혈통에 의한 대인(大人)의 통치가 아니라 도에 통달하고 덕을 함양한 군자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것이 비의인 이유는 왕족과 귀족만이 공경대부로 불리던 대인이 될 수 있던 시대에 지극히 위험한 정치사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수많은 제자 중에 안연만이 이를 깨쳤음을 발견하고 안연에게 눈을 찡긋하며 염화미소를 지어 보인 것입니다.
자로가 이를 눈치챘을까요? 자로의 질문을 보면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를 꿰뚫어 보고도 혹여 다른 이들이 눈치챌까 하여 일부러 엉뚱한 말을 꺼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속이 깊은 사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 역시 그에 화답해 예의 싸움만 좋아하는 자로를 꾸짖는 듯하는 말로 화제를 돌린 것은 아닐까요?
공자의 발언 중 ‘포호빙하(暴虎馮河)’는 ‘소민(小旻)’이란 시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을 축약한 것입니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지 못하고, 맨발로 황하를 못 건너노니, 사람들이 그 하나만 알뿐 그 밖의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不敢暴虎, 不敢憑河, 人知其一, 莫知其他).’ 그 다음 구절이 ‘전전긍긍하며,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을 밟을 때처럼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인데 이는 자여(증자)가 죽기 전에 한 발언에 인용됐습니다(8편 ‘태백’ 제3장).
대부분의 주석서는 이 구절만 주목할 뿐 '소민'의 메시지를 간과합니다. 소민은 매우 정치적 시입니다. 백성을 위한 좋은 계책을 내는 신하가 아니라 권모술수만 획책하는 모사꾼을 기용하면 하늘이 진노해 벌을 내린다는 내용입다. 깊은 연못 건너거나 살얼음 밟을 때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갖고 현명한 신하를 기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맨손으로 범을 못 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널 수 없다는 것은 알면서 왜 어진 신하가 없으면 정치를 망치는 것을 모르냐고 꾸짖습니다.
공자의 발언 중 ‘임무를 맡으면 두려워할 줄 안다(臨事而懼)’이라는 표현은 바로 ‘소민’의 내용을 반영한 표현인 것입니다. '소민'에는 '계책(꾀)' 또는 '도모하다'는 뜻의 모(謀)가 무려 10차례나 등장합니다. 백성을 위해 좋은 계책을 내는 신하가 아니라 권력다툼을 위해 못된 꾀만 내는 신하를 기용하면 폭정(暴政)을 피할 수 없다는 취지가 담겼습니다. ‘계책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기기를 좋아하는 사람(好謀而成者)’이란 표현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자로의 질문은 명백히 군사에 대한 것이건만 공자는 왜 정치 일반에 대한 시로써 응답한 것일까요? 바로 소민이란 시에 안연에게 말한 군자학의 비의가 투영돼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즉 집단 대대로 권력을 물려받아 권모술수만 알지 책임정치를 실현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정치를 맡겨선 안 된다는 혁명적 정치사상의 씨앗이 ‘소민’에 뿌려져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으려 하고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려는 것처럼 무모하기에 반드시 도와 덕을 갖춘 군자를 기용하는 혁신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