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민 공감능력

7편 술이(述而) 제9장

by 펭소아

공자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 음식을 먹을 때 배불리 먹지 않았으며, 초상날 곡을 하고 나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 哭則不歌.

자식어유상자지측 미상포야 자어시일 곡즉불가



어찌 보면 당연해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교원칙에 투철한 한국에서도 공자의 이런 원칙을 문상객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상집을 오래 지키기 위해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는 것이 권장됩니다. 요즘은 곡을 하지 않지만 자신이 상주가 아닌 이상 문상 다녀왔다고 소금을 뿌리는 경우는 있어도 노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후대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이런 공자의 개인적 원칙을 논어는 왜 기록해둔 걸까요? 저는 공자의 공감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뭐라 해서가 아니라 공자 스스로 이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상주의 슬픔에 함께 공명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에 따르면 3000명에 이르렀다는 공자의 제자들이 오로지 박학다식함 때문에 공자를 따랐을까요? 사인 계급 출신으로 겨우 나이 오십에 중소국인 노나라에서 하대부를 지낸 인물이고 13년간 풍찬노숙하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낙향한 노인네가 뭐가 볼 게 있다고 그토록 문전성시를 이뤘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공자의 말보다 그 행동을 보고 감복한 이들이 많았기에 실제론 그 10분의 1일지라도 그 정도의 제자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핵심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었을 터이니 탁월한 공감능력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그 진실함과 성실함에 있지 않나 합니다. 제자가 3000명이었으면 상가집 갈 일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상주가 된 제자들의 슬픔에 공명하면서도 절제된 슬픔으로 일상에 녹여내는 것을 보여줬을 것입니다. 그걸 본 제자들은 ‘아, 스승님이 말씀하신 예가 그냥 말로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에 차분히 녹아있구나’를 절감했기에 그토록 많은 제자가 운집하지 않았을까 미뤄 짐작해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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