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받은 수업료

7편 술이(述而) 제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육포 한 두루미 이상을 들고 온 사람을 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속수(束脩)에는 2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육포 한 묶음을 말합니다. 춘추시대의 예법으로 누군가의 집을 처음 방문할 때 예물을 들고 가야 했습니다. 이때 저마다의 신분에 걸맞은 예물이 달랐으니 보통 제후인 공(公)은 옥, 경(卿)은 염소, 대부는 기러기, 사(士)는 꿩을 선사했습니다. 이러한 예물 중에서 가장 단출한 것이 육포 열 조각을 한 두루미로 엮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공자는 이를 최소한의 수업료로 간주해 그 이상의 예물을 가져오면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제자로 거뒀다는 말이 됩니다.


두 번째는 남자가 관례를 치르고 성인 취급을 받게 되는 열다섯 이후엔 직접 상투를 묶고 의관을 정제하는데 이를 속수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자행속수(自行束脩)는 스스로 자신의 의관을 정제한다는 뜻으로 풀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나이가 열다섯이 넘으면 누구나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풀 수 있습니다.


둘 다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첫 번째 해석을 따랐습니다. 공자의 군자학이 혁명적이 이유 중 하나는 교육혁명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공자 이전에는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교육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사인 계층이나 일반 백성 대상으로 설사 소규모 사교육이 이뤄졌다 해도 개인교습 차원이었기에 수업료가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자는 이런 교육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수업료만 내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그 최소한의 수업료가 육포 한 묶음이었고 이로부터 제자가 스승에게 예를 표할 때 상징적으로 육포 한 두루미를 바치는 속수지례(束脩之禮)의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얼핏 들으면 열다섯만 넘으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표현이 더 교육혁명에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엔 치열한 현실감각이 빠져 있습니다. 공자가 나라님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보다는 수업료를 받긴 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울 경우엔 최소한의 수업료만 받았다는 의미로 새기는 것이 더 감동적이지 않나요?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2
매거진의 이전글네 귀퉁이 중 하나만 보여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