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4장
공자가 한가롭게 있을 때는 편안하고 생기가 넘쳤다.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자지연거 신신여야 요요여야
연(燕)은 본디 제비를 형상화한 글자로 음이 같은 연(宴)의 뜻을 빌려 주연을 즐기다, 쉬다는 뜻이 파생됐습니다. 그래서 연거(燕居)는 공무를 보지 않고 한가롭게 쉰다는 뜻을 같게 됐습니다.
신(申)은 굴절된 번개를 형상화한 글자로 위용 넘치는 신을 뜻했으나 점차 신(神)이 이를 대체하게 됩니다. 신신(申申)은 뭔가를 거듭한다는 뜻으로 신신당부(申申當付)하다로 쓰입니다. 여기서는 '펼 신(伸)'의 대체어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반복한 신신(伸伸)은 팔다리를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편안하게 쉬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relax를 뜻합니다.
요(夭)는 보디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 기울이고 춤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자입니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요염하다는 뜻이 파생됐습니다. 또한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뜻하기에 젊다는 뜻도 파생됐습니다. 젊은 나이에 일찍 죽는 것을 요절(夭折)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이를 되풀이해 쓴 요요(夭夭)에 대해선 대략 3가지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젊고 아름답다’와 ‘물건이 가늘고 곱다’, 마지막으로 ‘생기가 넘치다’입니다. 한마디로 젊은이처럼 생기발랄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선 점잖게 ‘생기가 넘치다’로만 풀었습니다.
송대 성리학자들은 공자를 근엄하고 엄숙한 인물로 상정했습니다. 공자가 일상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서입니다. “홀로 업무를 볼 때 태만하지 말고,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일처리 할 때는 정성을 다하라”는 공자의 발언(12편 ‘안연’ 제14장)과 ‘잘 때는 시체처럼 자지 않았으며, 집에 있을 때는 모양을 내지 않았다’는 공자에 대한 묘사 (10편 ‘향당’ 제14장)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申申에 대해선 ‘안색이 편안했다’로, 夭夭에 대해선 ‘표정이 온화했다’로 그 의미를 축소하려 합니다. 한마디로 몸은 꼿꼿했고 표정만 편안하고 온화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자의 어원이나 문맥으로 봤을 때 편안한 자세로 쉬면서 생기발랄하게 지냈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 '안연' 편의 발언은 공무를 볼 때의 자세입니다. '향당' 편의 묘사에서도 뒤편에 등장하는 ‘모양을 내지 않았다’는 사적 공간에서 릴랙스 한 공자를 볼 수 있습니다. 공무에 임하거나 학문을 할 때는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았지만 사적 공간에서 쉴 때는 편안함과 활력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과 사, 일하 때와 쉴 때를 뚜렷이 구별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퇴청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껏 점잔 빼던 사대부는 결코 공자의 계승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공자에 대한 유아적 상상에 기초한 ‘이상적 자아’에 심취한 나머지 공자가 가리키는 달은 안 보고 공자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위군자(僞君子)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