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네 가지 걱정거리

7편 술이(述而) 제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덕을 닦지 않는 것, 학문을 배우지 않는 것, 의로움을 듣고도 능히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 좋지 않음에도 능히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다.”


子曰: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자왈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



공자는 “군자는 근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君子不憂不懼‧12편 안연 제4장)" 했고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仁者不憂‧14편 헌문 제28장)고 했습니다.그런데 4가지 걱정거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어진 사람이 아닌 걸까요?


공자의 4가지 걱정거리를 뒤집으면 4가지에 주력하라는 뜻이 됩니다. 덕을 닦는 수덕(修德), 학문을 연마하는 강학(講學), 의로움을 실천하는 사의(徙儀), 나쁜 점을 개선하는 개불선(改不善)입니다. 듣고 보면 그냥 좋은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그 4가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게 되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군자학은 객관적 도를 터득하고 주관적 덕을 닦아 이를 어짊으로 통합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덕은 덕을 닦는 것이요, 강학은 도를 터득하기 위함입니다. 의로움은 인간사회에서 도와 덕이 만남으로 빚어집니다. 사의와 개불선은 바로 그 도와 덕이 만나서 이뤄지는 어짊의 실천을 말합니다.


천지만물이 운행하는 자연 상태의 도에는 의로움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사회에 적용될 경우엔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 되니 그것을 표현한 것이 도의(道義)이고 의리(義理)입니다. 한마디로 공동체가 돌아가게 해주는 정의(正義)입니다. 강학을 통해 그것을 깨친다면 수덕을 통해 그것을 실천에 옮길 내적인 힘을 갖추게 됩니다. 도와 덕이 만나야 공동체의 정의를 실천에 옮기는 사의가 가능해집니다.


사의가 그렇게 공동체 차원의 어짊이라면 개불선은 개인적 차원의 어짊의 실천입니다. 먼저 살아가면서 개인이 저지를 잘잘못을 객관적 도에 비춰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론 이해해도 몸이 그를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럴 때 덕의 힘이 필요합니다. 덕의 수양을 거친 사람만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기 때문에 꾀를 부리지 않고 머리로 깨친 것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수덕이 덕, 강학이 도를 겨냥한 배움이라면 사의와 개불선은 그를 통합한 어짊의 실천의 예로써 언급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의가 공동체적 어짊의 실천이라면 불개선은 개인적 어짊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실천을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 중용입니다.


의로움의 실천에 있어 위기를 보면 목숨을 던지겠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도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 보면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방법으로 그것을 관철해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중용입니다. 또한 잘못을 바로 잡음에 있어서도 자신의 잘못과 타인의 잘못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공동체를 이끌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엄격하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선 너그러워야 합니다. 이 또한 중용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어짊의 실천을 위해 필요한 현명함이 곧 중용인 것입니다.


공자는 강학을 좋아했고 수덕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의로움이 어짊의 바탕(義以爲質‧15편 ‘위령공’ 제18장)이라 했고 물탄개과(勿憚改過)를 노래하다시피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4가지 걱정거리는 공자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군자학을 배우는 제자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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