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1장
공자가 말했다. “있는 그대로를 진술할 뿐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은근히 내 자신을 우리 동네 팽씨 어르신에 견주어 본다.”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자왈 술이불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유명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이 언급된 장입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술이부작은 제자백가의 선두주자였던 공자가 생존을 위해 택한 현실비판의 방식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있는 그대로를 서술할 뿐 그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를 달지 않는 것입니다. 드라이한 사실 진술이지만 행간을 읽으면 거기에 비판의 메시지가 숨어있음을 미뤄 짐작하게 하는 기술법입니다.
술이부작의 기술법에는 당대에 벌어진 사건을 기술한 뒤 과거 역사적 사실과 대비하는 방식도 포함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취사선택하느냐에 있습니다. 공자는 비판의식이 펄펄 뛰는 과거의 사실을 걷어 올려 진부한 현실을 공격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했습니다.
요순의 선위(禪位)설화를 강조한 것은 부자승계를 당연시하는 혈통주의를 비판하고 신분혁명을 옹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은탕왕과 주문왕을 칭송한 것은 어질지 못한 통치자는 도태돼야 하고 그 대체자는 문덕을 갖춘 어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공에 대한 칭송은 어린 조카로부터 왕위 찬탈을 하지 않아다는 도덕성만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장자승계 원칙에 상관없이 유능한 사람이 통치해야 진정한 치국평천하가 이뤄진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술이부작은 이렇게 온고지신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옛 것을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발언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가 옛 것을 믿고 좋아한 것은 복고주의자거나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닙니다. 현실을 비판하고 그것을 재구성해낼 동력을 역사 속에서 끌어내고자 한 전략적 선택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의 기억 속에 묻힌 요순을 되살려내고, 왕이 아니었지만 더 왕 같았던 주공을 찬미하고, 노애공의 치세를 비판하기 위해 태평성대에 출현해야 할 기린의 죽음을 끌고 온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의 창조적 해석에 더 가깝습니다.
공자는 그런 자신을 은근히 노팽(老彭)에게 견준다고 했습니다. 노팽이 누구냐에 대해 무수한 추측이 있습니다. 그중에선 은나라 말기 800세까지 살았다는 팽조를 말한다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합니다. 오래 살았으니 옛 것을 믿고 좋아할만하다는 거죠. 하지만 괴력난신에 대해 말하기 꺼려했던 공자의 성향과 맞지 않습니다. 그 앞에 우리(我)라는 친근함의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혹자는 공자가 은나라의 후손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보다는 공자의 동네에 사는 나이 많은 팽씨 어르신 정도로 새기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내가 옛 것을 믿고 졸아하는 것은 복고주의의 신념 때문이 아니라 상식적 수준에서 그러한 것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해학적 표현을 쓴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