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30장
자공이 물었다. “널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민중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어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어짊에 그치겠느냐? 틀림없이 거룩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오히려 그렇게 하기 벅차 했을 것이다. 무릇 어진 사람은 자신이 일어서고자 하면 남부터 일으켜주고, 자신의 앞길을 트려할 때 남의 앞길부터 터준다.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어짊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제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자공의 질문이 사뭇 거창합니다. 널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민중울 구제한다는 말은 훗날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표현으로 완성된 유가의 통치이념입니다. 군자의 덕목인 어짊을 실현하려면 경세제민을 이룩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입니다.
경세제민에 성공하면 어짊을 넘어 거룩함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답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공이 넘보기엔 너무 높은 경지이니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벅차 했을 것’이라는 답은 자로가 군자에 대해 3차례 질문했을 때 마지막 답변에 등장합니다(14편 헌문 제42장). ‘자신을 수양하여 백성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은 요임금과 순임금조차도 벅차게 여겼을 것이니라(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군자에 대한 질문과 어짊에 대한 질문은 궤를 같이 합니다. 군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어짊이기 때문입니다. 어짊은 수제의 덕과 치평의 도의 결합으로 이뤄집니다. 자공은 자로와 더불어 치평파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자로와 자공이 어짊이나 군자에 대해 질문할 때 치평파인 그들의 치우침을 경계해 수제로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장 역시 같습니다.
자공이 치평파의 원대한 목표인 경세제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공자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 가능한 수제의 덕목부터 챙기라 경계한 것이니 곧 이타적 삶입니다. 자신이 일어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부터 일으켜주고, 자신의 앞길을 트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앞길부터 터주라. 이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남에게 먼저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는 공자의 ‘기소물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의 테마를 서양식 황금률(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로 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達)은 도통하다는 뜻의 통달하다와 출세하다는 뜻의 현달하다 2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후자의 뜻을 택했습니다. 즉 자신이 출세하고 싶으면 남의 출세부터 도우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능근취비(能近取譬)의 테마입니다. 여기서 한자 비(譬)를 쓴 것이 참으로 심오합니다. 譬는 비유하다는 뜻에서 출발해 비슷한 것에 대한 추론 능력인 유비(類比)를 통한 깨달음으로 발전한 한자입니다. 어진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에 대한 유비적 생각에서 멀고 깊은 것까지 꿰뚫게 된다는 뜻입니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리를 포괄하는 동시에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공감능력부터 갖춰야 치국평천하의 웅혼한 목표까지 이룰 수 있다는 함의를 갖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공자의 답은 “경세제민하고 싶으면 능근취비부터 하라”로 요약됩니다. 세상을 구하고 싶은 거룩하고 웅혼한 목표를 이루려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뜻을 이루게 도와주려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구원하고 싶으면 바로 곁에 있는 사람부터 챙기라는 뜻이니 어찌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