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을 갖춰야 할 사람은 누구?

6편 옹야(雍也) 제29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중용이 덕이 되는 것은 그 지극함에서 나온다! 백성이 그 덕을 보는 경우가 드문 이유다.”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자왈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중용은 단순히 중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짧은 시간 내에 최적의 대안을 찾은 지혜를 위기의 순간에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中)은 단순히 중간이 아니라 적중하다 또는 알맞다에 해당하는 뜻이고 용(庸)은 쓰다(用)는 뜻이 아니라 일정하다, 변치 않다에서 파생된 평상(平常)과 평정(平靜)의 뜻으로 봐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중용은 고정된 과녁을 쏘는 양궁보다 움직이는 과녁을 맞혀야 하는 클레이 사격에 더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공자의 발언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용이 군자가 갖춰야 할 덕이 되는 것은 그것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을 살면서 어림짐작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엄밀히 따져보고 계산해보지 않아도 ‘대략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일상의 헤아림입니다.


그 정도의 헤아림은 덕이 될 수 없습니다. 덕이 되려면 그런 대충의 헤아림이 놀랍도록 정밀해야 하고, 긴박하고 중대한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발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군주나 나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이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때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런 지극한 덕목은 백성(民)이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타고난 성인이나 훈련받은 군자나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민선구의(民鮮久矣)를 ‘중용의 덕을 오래 견지하는 사람은 드물다’로 새기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입니다. ‘지극한 경지에 이른 중용을 발휘하는 군자를 모시는 백성이 드물다’로 새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구(久)는 오래 머문다는 뜻입니다.


공자의 원래 발언은 군주와 대부 이상의 지도자 중에 중용의 지혜를 지극한 경지로 발휘하는 이들이 드물다는 현실 비판입니다. 왕다운 왕, 제후다운 제후, 대부다운 대부가 없다는 소리인 것입니다. 한대 이후의 유학자들은 이런 해석이 윗사람을 치받는 하극상의 발언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공자사상을 수직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충효사상으로 바꿔치기한 결과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용이 덕 됨은 지극해 그 덕을 소유한 사람이 드물다’는 식으로 물타기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이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바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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