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28장
공자가 남자(위령공의 부인)를 만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가 맹세하며 말했다. “만일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하늘이 벌할 것이다, 하늘이 벌할 것이야!”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자견남자 자로불열 부자시지왈 여소부자 천염지 천염지
천하주유 시기 공자가 위나라에 두 번째로 머물며 재상에 기용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남자(南子)는 당시 위나라 제후인 위령공의 두 번째 아내였으니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남자가 공자를 불렀습니다. 사마천에 따르면 당시 제후국에서 벼슬을 하게 되면 제후의 부인(군부인)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라 했습니다. 공자는 공식적 벼슬은 없었으나 빈객으로 녹봉을 받고 있었기에 이를 거부하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 생각하여 남자를 만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맏제자인 자로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데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2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남자를 밝히는 음탕한 여인이어서라는 것과 자공과 남자의 정치적 노선이 달랐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위나라 궁정의 복잡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당시 위령공은 정무를 게을리할 정도로 미소년 출신의 대부 미자하에 홀딱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아내의 적적함을 달래주려고 송나라 공실의 친척 중 한 명인 송조를 불러다 대부의 자리에 앉혀줍니다. 그런데 이 송조가 대단한 미남자였고 그래서 두 사람이 불륜행각을 벌인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소문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소문이 위나라는 물론 송나라까지 파다하게 퍼져 위령공의 태자였던 희괴 외(훗날의 위장공)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송나라를 방문했을 때 “당신들의 암퇘지를 만족시켜줬는데 왜 우리의 아름다운 수퇘지를 돌려주지 않는가?”라는 노래를 듣고 발끈하게 됩니다. 위나라로 돌아온 그는 새어머니의 암살을 기도하다 발각돼 태자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국외 추방됩니다.
위령공이 죽자 남자는 괴외의 아들인 희첩(위출공)에게 제후의 자리를 잇게 합니다. 이는 12년 뒤 부자간 권력다툼으로 비화하고 사실상 위출공 편에 섰던 자로의 죽음을 몰고 오게 됩니다. 그럼 자로가 미리 이를 예견하고 공자와 남자의 만남을 꺼렸다는 말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다만 공자와 남자의 만남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질 것을 저어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현실 정치 감각이 탁월했던 자로가 소문만 믿고 남자가 음탕하다고 단정했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위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정계의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른 송나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헛소문일 수 있습니다. 괴외 역시 그에 편승해 자신의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될지 모를 젊은 새어머니를 섣불리 제거하려다 자충수를 뒀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게다가 자로는 위나라의 실권을 잡기 위해서 현실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실권자인 남자의 마음을 훔쳐서라도 재상의 자리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만 남자와 송조의 세력을 믿고 의지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에서 괜한 구설수에만 오른다는 생각에 남자를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공자는 왜 팜 파탈로 소문 난 남자를 만났을까요? 단순히 예를 지키기 위함이었을까요? 공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뭇사람이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뭇사람이 좋게 말하더라도 반드시 살피라”(15편 위령공 제28장). 또 이런 말도 했지요. “남이 나를 속일 거라고 미리 넘겨짚지 말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미리 억측하지 마라. 일단 그를 만나보고 난 뒤 나를 속일 사람인지 아닌지, 나를 믿어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미리 내다볼 수 있어야 진정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14편 헌문 제31장).
공자는 자신이 직접 그 사람을 만나보고 겪기 전에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남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첫 만남으로 바로 남자의 사람됨을 간파했고 그로 인해 자신도 괜한 구설수에 오를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신과 남자 사이에 부적절한 말이 오가지 않았음을 맹세의 형태로까지 선포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자를 둘러싼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진술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만남 직후 공자가 위나라를 떠난 것 또한 같은 메시지를 전하니 이 또한 술이부작의 서술법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