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와 어짊의 두 바퀴로 가야할 곳

6편 옹야(雍也) 제22장

by 펭소아

번지가 슬기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백성이 의롭게 살 수 있게 힘쓰며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그러면 가히 슬기롭다 할 것이다.”

번지가 어짊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솔선해 처리하고 대가는 나중에 얻는다. 그러면 가히 어질다 할 것이다.”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문인 왈 인자선난이후획 가위인의



23장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슬기와 어짊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자(子) 계열 제자의 자로’라 할 번지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먼저 슬기에 대해선 2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백성이 의롭게 살 수 있게 힘쓰는 것이고 둘째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둘은 모두 사(士) 계급의 업무와 관련돼 있습니다. 첫째는 목민관의 사명이고 둘째는 점치고 제사 모시는 축(祝), 종(宗), 복(卜), 사(史)의 임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당시엔 국가중대사를 정할 때 점을 쳐서 정했고 종묘사직의 조상신에게 제사 올리는 일이 중요한 국가의례였습니다. 공자는 바로 그런 점치고 제사 모시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전문집단인 유(儒)에 속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유가의 전통을 국가통치술로 발효시켜 예치와 문덕의 사상을 빚어낸 것이 군자학입니다.


따라서 귀신을 섬기는 일은 군자학의 둥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럼에도 공자는 여기서 귀신을 공경은 하되 그에 너무 빠지진 말라고 선을 긋습니다. 백성을 의롭게 하는 일이 더 중하고 귀신을 섬기는 일은 뒤로 미뤄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로가 귀신에 대해 물었을 때 ‘사람을 섬기지 못하거늘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11편 선진 제11장)라는 말과 궤를 같이합니다. 백성을 섬기는 것이 귀신을 섬기는 일보다 중하다는 발언이야말로 공자의 가르침을 유학이 아니라 군자학으로 불러야 할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어짊에 대해선 단 한 가지만 말합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실천할 수 있으면 어질다고 할 수 있다고. 이는 덕을 높이는 방법(崇德)에 대해 묻는 번지에게 ‘선사후득(先事後得)’의 자세를 갖추라고 말한 대목(12편 ‘안연’ 제21장)과 공명하는 내용입니다.


‘논어’ 속 번지는 힘쓰는 일과 농사일에 관심이 많지만 문해력이 부족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문 제자 중 가장 서민적 풍모를 지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상에서 손해 보는 걸 몹시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번지가 공직에 진출했을 때 민심을 얻기 위해선 목전의 이익만 따져선 안 된다고 거듭 일깨움을 준 것 아닌가 합니다.


21장과 달리 이 장에서 슬기와 어짊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공공의 일을 우선시하는 자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선공후사를 실천하는 어짊뿐 아니라 백성이 비굴하지 않고 올곧게 살 수 있게 하는 슬기 역시 공적인 삶(비오스)과 연관된 덕목으로 호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군자학은 비오스를 추구하는 학문이기에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습니다. 이를 도덕심성학으로만 풀어낸 맹자나 깨달음의 학문(도학)으로 풀어낸 주자의 한계는 거기서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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