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수요산 아니라 요산요수인 이유

6편 옹야(雍也) 제2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즐겁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공자는 군자가 되는 세 갈래 길로 인지용(仁知勇)을 꼽았습니다(14편 ‘헌문’ 제28장). 어짊과 슬기, 용기는 그렇게 병렬구조를 취하지만 엄연한 서열순이기도 합니다. 어짊이 으뜸이고 슬기가 버금가고 용기가 다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터득해가는 발생과정은 슬기-어짊-용기의 순서를 취하게 됩니다(9편 ‘자한’ 제29장). 학문연마를 통해 도를 터득하니 미혹되지 않은 슬기를 벼리게 되고 다시 인격함양을 더해 도와 덕을 종합함으로써 근심 없는 어짊을 빚어내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의연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자세가 베어나게 되니 두려움 없는 용기의 자세입니다.


이 장에선 그 막내인 용기를 떼어내고 슬기와 어짊을 나란히 비교합니다. 한데 그 비교 방식이 유비적이고 심미적입니다. 슬기로운 사람(知者)이 좋아하는 물은 끊임없이 흐르며 고정된 형태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자재로 변화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사리 분별력이 뛰어나 막힘이 없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니 살아가면서 다양한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을 즐길 줄 압니다. 초기불경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습니다.


어진 사람(仁者)이 좋아하는 산은 오랫동안 한 곳을 지키니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과 웅숭깊은 고요함을 품고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사물의 이치(도)를 터득한 동시에 수많은 사람을 품어내는 넉넉함(덕)을 갖췄기에 한결같고 듬직합니다. 또 그렇기에 오랫동안 변치 않는 지속성과 희로애락에 대한 초연함을 겸비합니다. ‘숫파타니파타’에 나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의 풍모를 함께 갖췄다 할 것입니다.


물은 산에서 솟아 바다로 흘러갑니다. 물이 산에서 연원 하듯 슬기 또한 어짊에서 연원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움직임(動)은 멈춤(靜) 속에서 배태되고, 변화는 안정 위에서 꽃핍니다.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먼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슬기와 어짊을 단순한 병렬관계로 여겨선 안 됩니다. 이는 이 장의 내용을 축약한 표현이 요수요산(樂水樂山)이 아니라 요산요수(樂山樂水)인 것에서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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