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16장
공자가 말했다. “축타처럼 말 꾸며내는 재주가 없거나 송조처럼 잘생기지 않으면 요즘 세상에선 화를 면하기 어렵겠구나!”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자왈 불유축타지녕 이유송조지미 난호면어금지세의
‘물탄개과를 실천한 공자의 발언’(15편 '위령공' 제7장)에서 살펴봤듯이 축타는 위나라의 예를 관장하는 대부를 지낸 사어와 동일인입니다. 축타에 대한 공자의 원래 평가는 이 장의 내용처럼 그럴듯한 말솜씨로 아부만 잘하는 영자(佞者)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송조는 위령공의 부인 남자(南子)의 모국인 송나라 공실 사람으로 남자가 위령공에게 애원해 위나라에 와서 대부가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얼굴만 잘생겼지 별 역할을 하지 못하자 남자와 불륜관계를 사다리 삼아 출세했다는 혹평에 시달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얼굴값 못하는 무능한 남자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공자 발언의 첫머리에 나오는 불(不)이 축타에 대한 평가에만 걸리느냐 아니면 송조에도 걸리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저는 송조에게도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축타와 송조를 똑같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푼 것입니다.
그래야 “교묘한 말로 현혹하고 가식적인 낯빛으로 속이는 사람 중에 어진 이는 드물다”(17편 ‘양화’ 제17장)라는 공자의 발언과 자연스럽게 대구를 이루게 됩니다. 위나라 사람 중에서 교언(巧言)의 화신이 축타라면 영색(令色)의 대명사가 송조라는 문학적 비유가 완성됩니다. 다시 말해 축타송조가 교언영색의 동의어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축타에 대한 이런 평가가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발언과 배치된다는 점입니다. ‘외교의 중숙어(공어), 군무의 왕손가, 의례의 축타’ 3인방이 있어 위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는 발언(14편 '헌문' 제19장)은 물론 “나라에 도가 있건 없건 늘 화살 같았다”는 축타에 대한 상찬(15편 ‘위령공’ 제7장)과도 상충합니다.
그러다보니 “축타와 같은 말솜씨가 없다면 송조 같은 미남자라 해도 화를 면할 수 없는 세상"이라며 축타를 높이고 송조를 낮추는 해석도 나옵니다. 공자는 만고불변의 성인이기에 오판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시 공자의 평소 지론인 교언영색과 상충되는 해석이 되고 맙니다.
해법은 축타의 죽음을 전후해 공자의 평가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말솜씨 좋은 아부꾼에 불과하다 여겼다가 그가 시체가 돼서도 위령공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신후지간(身後之諫)의 사연을 접하고 올곧은 사람으로 재평가하게 된 것입니다. 축타는 공자가 위나라로 건너오기 직전에 숨졌습니다. 따라서 축타를 직접 만나본 적 없이 풍문에 의거한 판단을 내렸던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면서 그의 행적을 접하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자를 타고난 성인이 아니라 자신이 말한 물탄개과를 실천에 옮긴 언행일치의 인물로 바라볼 때 가능한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