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17장
공자가 말했다. “누가 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어찌하여 이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인가?”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자왈 수능출불유호 하막유사도야
호(戶)는 모든 종류의 문을 말하니 창문도 포함됩니다. 사방이 막힌 집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문이나 창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도(道)는 길이란 구체적 의미와 이치와 도리라는 추상적 뜻을 함께 갖습니다. 여기서는 사도(斯道)라 하여 ‘이 길’이라 지칭했으니 공자가 창학한 군자의 길(君子之道)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밖으로 나가는 문과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에 빗대 군자지도를 따르지 않는 세태를 문학적으로 질타한 것입니다.
斯道라는 표현은 9편 자한 제5장에서 공자가 말한 사문(斯文)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나라와 위나라의 국경지대인 광 땅에서 공자를 양호로 오인한 주민의 습격을 받았을 때 “하늘이 아직 이 문을 소멸하려 하지 않는데 광 땅 사람들이 나를 어찌하겠느냐?“라는 공자의 발언 속에 나오는 ‘이 문’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주희는 斯文이 斯道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으로 봤습니다. 문은 군사력인 무(武)나 경제력인 부(富)와 같은 물리적 힘을 동원하지 않고 도덕과 언어 같은 문화의 힘으로 상대를 감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문덕(文德)으로도 표현됩니다.
과연 斯文과 斯道는 같은 것을 말하는 걸까요? 논리적으로 구별하자면 斯文은 斯文德이니 덕에 속합니다. 반면 斯道는 도에 속합니다. 덕이 사람됨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도는 천지만물의 운행원리입니다. 군자는 그 둘을 통합한 어짊(仁)을 추구하니 궁극에 가면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엄연히 범주가 다릅니다. 덕이 주관적 윤리의 확장이라면 도는 객관적 통치원리의 추구입니다.
앞서 斯文이 구체적으로 문화의 힘으로 상대를 감화시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斯道는 과연 어떤 의미 차이를 가질까요? 공자는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만 군자학의 핵심원리를 말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바로 어진 사람이 국가를 통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아버지를 잘 만난 사람이 아니라 인격수양과 학문연마를 통해 리더의 자격을 갖춘 사람(군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순-우로 이뤄진 선양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斯道의 의미를 구체화한 뒤 다시 공자의 발언으로 돌아가면 “어찌하여 이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인가”라고 통탄하는 이유가 명쾌해집니다. 왕과 제후의 지위는 말할 것도 없고 경상과 대부의 지위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혈통으로 결정되고 있었으니 하나같이 斯道를 따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유자(儒者)라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斯道를 따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斯道 도리니 이치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 미화하며 결국은 왕조국가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곡학아세를 펼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공자의 질타는 왕조국가가 유지된 2000년이 넘는 세월 내내 자신의 제자를 자처한 사람들에게조차 여전히 유효했던 셈입니다. 그들에게 斯道는 여전히 ‘가지 않은 길’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