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의 시라노

6편 옹야(雍也) 제14장

by 펭소아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됐다. 공자가 말했다. “너는 거기서 어떤 인재를 얻었느냐?”

자유가 말했다. “담대멸명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길을 갈 때 지름길을 가는 법이 없습니다. 공무 이외의 일로 저 언언의 집무실을 찾은 적이 없습니다.”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자유위무성재. 자왈 여득인언이호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왈 유담대멸명자 행불유경 비공사 미상지어언지실야



담대멸명(澹臺滅明)은 ‘중니제자열전’에서 공문의 72현 중 한 명으로 언급됩니다. 무성 출신으로 자는 자우(子羽), 공자보다 39세 어리다고 나옵니다. 자유(언언)가 공자보다 45세 연하이니 나이는 자유보다 많지만 자유를 통해 뒤늦게 공문에 입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된 시점이 공자가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귀국한 뒷일 터이니 공문에서 수학한 기간은 5년도 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논어’에는 이 장에만 등장하는데 ‘길을 갈 때 지름길을 가는 법이 없다’는 행유불경(行不由徑)이란 사자성어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편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정도(正道)가 아니면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공무가 아니면 상사의 사무실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는 법이 없고 사사로운 이득을 챙기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유능하면서도 올곧은 사람이란 점을 그의 행동거지에 빗대어 풀어낸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람이 너무 고지식한 것 아니냐고 시비를 걸 법합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에게 직접 일을 시켜본 상사의 검증된 평가라는 점입니다. 고지식하고 편벽돼 일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오로지 올곧음만 갖고 자유가 칭찬했을 리가 없습니다. 일처리가 시원시원하면서도 음습한 구석이 없었기에 저리 상찬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공자는 자유가 읍재로 있을 때 무성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17편 ‘양화’ 제4장). 따라서 자유의 이런 말을 듣고 담대멸명을 직접 만나본 뒤 제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에 대한 공자의 첫인상은 별로였습니다. 외모가 볼품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담대멸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에는 ‘맑은 대에서 빛마저 사그라지다’는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외모는 빛날 게 하나도 없지만 그를 품고 있는 영혼은 맑디맑다는 의미로 스승인 공자가 내려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 공자는 그의 사람됨이 진국임을 깨달아 10대 제자 중 하나로 꼽았던 재아(재여)와 비교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중니제자열전’은 전합니다. “내 일찍이 말재주로 사람을 평가했다가 재여에게 실수했고, 외모로 평가했다가 자우에게 실수했다.” 이처럼 담대멸명은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의 주인공처럼 볼품없는 외모를 지녔지만 탁월한 언변과 맑은 영혼을 지녔으니 '공문의 시라노'로 부를 만 합니다.


양쯔강 이남의 오나라 출신 자유는 공자 사후 고향으로 돌아가 학당을 연 뒤 ‘남방공자’로 불릴 만큼 학풍을 떨쳤습니다. 그의 사제였던 담대멸명도 그런 사형을 따라 양자강이남 초나라 일대에서 학당을 열어 제자를 삼백 명이나 뒀다고 ‘중니제자열전’은 전합니다. 스승의 10분의 1이나 되는 규모입니다. 공문 입문 세월이 5년 미만임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그의 올곧은 품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처럼 덕행이 뛰어난 수제파 계열의 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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