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 아니라 군자학인 이유2

6편 옹야(雍也) 제13장

by 펭소아

공자가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돼야지 소인스러운 선비가 돼선 안 된다.”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자위자하왈 여위군자유 무위소인유



이 장의 흥미로운 점은 군자와 선비(儒)를 뚜렷이 구별하는 점입니다. 선비가 단순히 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구별입니다. 원래 유(儒)는 각종 의식을 치를 때 그 예법을 관장하는 전문직군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이들이 벼슬길에 나서면 점을 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거나 국가적 의례를 주관하는 축(祝), 종(宗), 복(卜), 사(史)가 됐습니다. 공자와 그 제자는 기본적으로 유에 속했습니다.


후대 공자의 제자를 자처하게 되는 일군의 지식인 그룹을 유가(儒家)로 부르게 된 것도 이에 연원합니다. 송나라 무렵부터 벼슬길에 나서지 못한 유인(儒人)을 사(士), 벼슬길에 나선 유인을 대부(大夫)로 부르게 됩니다. 유가 사대부의 동의어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본디 유는 벼슬길에 나서도 하위 공직자인 사(士)에 머물렀습니다. 축타(사어)와 공자처럼 고위 공직자인 대부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공자가 10대 제자로 뽑은 자하는 자유와 더불어 문학(文學)에 일가견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문학은 전통적 유학(儒學)에 속한 내용 중에서 공자가 새로 학문적으로 정립해 글로 기록한 일체를 뜻합니다. 제례와 의례에서 파생한 예(禮)와 점치는 법에서 파생된 역(易), 그 둘을 기록한 것에서 파생한 역사(史) 그리고 시(詩)를 아우릅니다.


공자가 이를 유학(儒學)이라 부르지 않고 문학(文學)이라고 별도로 호명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전통적 유학은 귀신을 섬기고 점을 치는 무속신앙을 고도로 의례화한 것의 기능적 전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거기서부터 출발하긴 했지만 그와 차별화된 학문을 정리했기에 이를 차별화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덕(文德)의 정치를 구현하는 데 기초가 되는 고상한 학문이란 뜻으로 문학이라 부르게 된 것 아닐까요?


다시 말해 공자는 자신이 창학한 학문을 전통적 유학과 차별하려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제자 중에서 유학의 전통에 가장 가까운 학문에 정통한 자하에게 남긴 이 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됩니다. 기존의 유학을 배운 이들을 소인유(小人儒)로 통칭하면서 자하는 그들과 차별되는 군자유(君子儒)가 되라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인유가 자신의 입신출세를 목표로 점치는 법과 제사 모시는 법만 달달 외우는 사람이라면 군자유는 통치학의 일환으로서 문사철을 아우루는 학문을 연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공자의 학문을 유학이 아니라 군자학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2
매거진의 이전글공문의 시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