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10장
백우가 병에 걸렸다. 공자가 문병을 가 창밖에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방법이 없다니, 운명이란 말인가!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백우유질 자문지 자유집기수왈 무지 명의부 사인야이유사질야 사인야이유사질야
백우는 공문이 자랑하는 염씨 삼형제 중 맏이인 염경의 자입니다. 염씨 가문은 염경-영옹(중궁)-염구(염유) 3형제가 모두 공문십철에 들어갔기에 공문 최고의 명문가로 꼽힙니다. 백우와 중궁은 안연, 민자건과 더불어 덕행의 4인방에 들었고, 염유는 자로와 더불어 정사에 밝은 2명으로 꼽혀 후대에 일문삼현(一門三賢)으로도 불렸습니다.
중옹과 염유는 나이가 엇비슷해 공자보다 29살 어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맏형인 백우는 공자보다 7살 연하였습니다. 아홉 살 연하였던 자로보다 많은 나이입니다. 사마천의 ‘중니제자열전’에 따르면 공자가 중도(中都)라는 고을의 읍재(邑宰)로 있다가 사구로 승진하자 그 뒤를 이어 중도의 읍재 직을 계승했다고 나옵니다. 공문의 리더로서 자로보다 더 경륜과 능력을 인정받았던 제자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백우는 안타깝게도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뜹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활약상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아마도 중도의 읍재를 맡은 직후가 아닐까 합니다. 그때의 나이가 40대 중후반일터이니 당나라 때 운후(鄆侯)로 추증되고 송나라 때 운공(鄆公)으로 격상된 그의 초상화 속 백발노인과 다릅니다. 이 장은 공자가 그렇게 아끼던 제자를 처음 떠나보낼 때의 애통한 정황이 담겨 있습니다.
공자가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창밖에서 손만 잡았다는 내용 때문에 백우가 스승에게 얼굴조차 보일 수 없는 몹쓸 병, 곧 나병에 걸렸다고 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나병에 걸린 사람과는 접촉을 피하기 마련인데 손을 잡았다고 하였으니 뭔가 어설픕니다. 그저 얼굴을 보이기 힘들 정도로 심한 중병에 걸려 숨졌다고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합니다.
다만 고대의 불치병이던 나병이 환기시키는 상징성에 대해선 생각해 볼 만합니다. 예수는 나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적을 행했고 부처는 나병에 걸린 제자가 득도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반면 공자는 가장 아끼던 제자를 잃으면서 “이것이 운명이란 말인가(命矣夫)!”라고 통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다가섭니다.
공자가 말하는 명(命)은 하늘이 정한 운명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말합니다. 합리주의자였던 공자는 이를 인생의 방정식을 푸는데 바뀌지 않는 항수(恒數)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명을 바꾸기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린다거나 샤머니즘적 행위를 취하길 거부했습니다. 다만 그 무자비함과 비정함에 인간적 애도를 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 명에 대한 인간적 연민과 한탄이 담긴 내용이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공자가 말년에 주역에 심취한 것을 두고 후대의 윤리주의자들은 덕(德)을 쌓아 이 명을 바꿔보고자 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보단 예측불가한 인생의 항수를 읽어냄으로써 그렇지 않은 변수를 바꾸는 것에 치중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객관적 자연법칙으로서 도(道)를 터득하는 방편 아니었을까요?
원문의 ‘亡之’에 대해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있습니다. 亡은 ‘잃을 망’과 ‘없을 무’ 2가지 뜻과 음을 지닙니다. 병문안을 간 사람이 환자 앞에서 “그대를 잃게 되나니”라던가 “가망이 없다”라는 절망적 발언을 대놓고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럴 리 없다”라고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발언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니”로 새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