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덕이 어우러진 무아지경

6편 옹야(雍也) 제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이나 어짊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머지 다른 사람은 짧으면 하루, 길어야 한 달 마음이 어짊에 이를까 말까인데.”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자왈 회야 기심삼월불위인 기여즉일월지언이이의



어짊은 도와 덕이 합일된 것이라고 풀어왔습니다. 이 장의 내용을 보면 어짊은 그 합일이 이뤄진 순간에 발현되는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객관적 세계의 원리(도)를 체현한 상태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덕)을 실현할 영감이 스파크처럼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창조적 순간이 어쩌다 한번씩 찾아옵니다. 그것이 머무르는 기간도 짧으면 하루, 길어야 한 달을 못 넘기는데 안연은 3개월 내내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논어’에서 3개월은 90여 일이란 날짜보다는 오랜 기간을 뜻하는 숙어처럼 쓰입니다. 공자가 순임금 때 노래인 '소(韶)' 듣고 석 달이나 고기 맛을 잊었다는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도와 덕이 합일되는 어짊의 순간을 안연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어짊의 상태는 불가에서 말하는 삼매경(三昧境)과 비슷합니다. ‘청정한 자성(自性)의 본래면목을 떠나지 않는 경지’를 뜻하는 불교용어로 선불교에서 말하는 선정(禪定)의 상태를 뜻합니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한다’는 산스크리트어 삼마디(samadhi)를 한자어로 가차한 것입니다.


삼매경이란 한자표현은 수나라의 승려 혜원(慧遠)이 편찬한 불교 용어집 ‘대승의장(大乘義章)’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삼이란 숫자를 썼을까요? 혹시 안연이 3개월간 어짊의 상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논어’의 이 구절 때문은 아닐까요?


이렇게 고도의 정신력이 발휘되는 고양된 상태를 찬미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세계에서는 일반적 현상이었습니다. 샤머니즘이 지배하던 시대 샤먼(무당)이 접신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고 공동체가 나갈 바를 제시하던 무아지경과 황홀경의 상태를 지극한 깨달음의 경지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이런 무아지경을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이자 힘인 퓌시스(physis)가 지상의 영웅을 피뢰침 삼아 순간적으로 현현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무용이 빛을 발하는 순간, 그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미모에 현혹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퓌시스의 출현을 공자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세상의 객관적 원리인 도가 체현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퓌시스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무용이 넘쳐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시체를 전차에 끌고 다니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반해서 함께 도망을 가는 순간 그녀는 불륜이라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어짊은 이렇게 무차별적인 도를 덕이란 고삐로 길들이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덕은 인간세계에 널리 이롭게 조율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런 덕을 탁월함이란 뜻의 아레테(arete)로 불렀습니다.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퓌시스를 인간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드러내고 유도하는 것이 아레테입니다.


그럼 도에 해당하는 퓌시스와 덕에 해당하는 아레테를 접목한 어짊에 걸맞은 그리스적 용어가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앎을 세 종류로 나눠서 설명했습니다. 테오리아(theoria)와 프락시스(praxis) 그리고 포이에시스(poiēsis)입니다. 테오리아는 가장 차원이 높은 이론적 이해, 프락시스는 정치적․윤리적 실천을 통한 이해, 포이에시스는 창조적․예술적 작업을 통한 이해를 뜻합니다.


어짊은 어쩌면 이 3가지 앎을 최고조로 체현한 상태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했던 도를 터득하기 위해선 탈속의 경지에 오른 테오리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터득한 도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홍익인간의 이념에 맞게 적용하려면 입세간(入世間)의 실천적 지혜로서 프락시스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를 위해 필요한 덕을 키우려면 ‘시로써 일어나고, 예로써 서며, 악으로써 이룬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의 경지에 이르도록 갈고닦아야 하니 예술적 포이에시스를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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