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 쓸 때의 중용

6편 옹야(雍也) 제5장 & 제4장

by 펭소아

원사(원헌)가 공자의 가재가 됐을 때 그에게 좁쌀 9백 말의 녹봉을 줬으나 원헌이 사양했다. 공자가 말했다. “사양하지 말거라! 네 이웃과 마을사람에게 나눠주면 되지 않느냐!”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隣里鄕黨乎!”

원사위지재 여지속구백 사 자왈 무 이여이린리향당호


자화(공서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염유가 자화의 모친에게 좁쌀을 보내자고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6말 4되를 보내라.”

염유가 좀 더 주자고 청하니 “16말을 보내라”라고 말했다. 염유는 900말을 보냈다.

공자가 말했다. “공서적(공서화)이 제 나라에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 차림이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군자는 다급한 자를 구제하지 부자에게 더 보태지 않는다.”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자화시어제 염자위기모청속 자왈 여지부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청익 왈 여지유 염자여지속오병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자왈 적지적제야 승비마의경구 오문지야 군자주급불계부



원사는 원헌을 말합니다. 원헌의 자가 공자의 손자인 공급과 같은 자사(子思)였기에 성을 붙여 원사로 호명한 것 아닐까 합니다. 연배가 자공과 비슷한 제 계열 제자로 공자가 노나라에서 사구(司寇)의 벼슬을 맡아 대부의 지위에 올랐을 때 자신의 가재(家宰)로 삼은 인물입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청렴하고 자부심이 남달랐던 그는 공자가 900두(1두=1말=10되)의 녹봉을 책정하자 이를 사양합니다. 벼슬이 탐나서가 아니라 스승을 돕기 위해 출사한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까요?


그런 원헌에게 공자는 사양하지 말고 받되 본인이 필요 없으면 주변에 나눠주라고 말합니다. 공자 역시 사적인 친분 때문에 원헌을 기용한 것이 아니라 공적인 필요에 의해 기용했음을 알리기 위함 아닐까요? 그렇게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면 나중이라도 원헌이 덕을 볼 수 있게 배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문의 린리향당(隣里鄕黨)은 당시 마을의 구성단위를 합쳐서 표현한 것으로 이웃에 대한 통칭으로 보면 됩니다. 1린은 5가구(五家), 1리는 25가구(五隣), 1당은 500가구(二十里), 1향은 1만2500가구(二十五黨)입니다.


자화는 공서화의 자입니다. ‘중니제자열전’에선 그가 공자보다 42세 연하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그러나 논어 11편 ‘선진’ 제25장을 보면 증석, 자로, 염유, 공서화 4명의 제자에게 공자가 “너희보다 나이가 조금 많다 하여 나를 어려워 말기 바란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증석이 6세 연하, 자로가 9세 연하, 염유가 29세 연하임을 감안하면 공서화도 30세 정도 연하인 제 계열 제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공문에서 외교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셋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공문십철로 언어에 일가견이 있다고 뽑힌 자로와 재아 그리고 공서화입니다. 5편 ‘공야장’ 제8장에서 공자는 재아가 빈객을 접대할 고위 외교관감은 된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11편 ‘선진’ 제25장에서 공서화도 ‘종묘의 제사와 제후의 회맹 때 의례를 보좌하는 소상(小相)의 역할을 맡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힙니다. 춘추전국시대 제후국 간의 외교 담담자는 말솜씨도 좋아야 하지만 의례에도 밝아야 했다는 점에서 자타 공인 외교전문가라 할 만합니다.


그런 공서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습니다. 원문의 使는 여기선 ‘사신 갈 시’로 새깁니다. 또 그런 공서화의 노모를 위해 식량을 보내겠다고 밝힌 사람이 염유입니다. 원문에서 염자(冉子)로 칭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자가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와 염유가 대부의 반열에 오르고 공서화가 외교관의 임무를 수행할 무렵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를 염유가 자청하고 나섰을까요? 첫째는 그가 대분의 벼슬에 있었으니 그만한 재량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는 염유의 어머니기 공서 씨였다는 점에서 공서화가 염유의 외가식구여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공자의 허락을 구했다는 것은 일종의 생색내기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승님 제가 공문의 동문을 위해 이런 도움을 주려하는데 기특하죠?”라고 공치사를 받고 싶어서 고한 것이라 봐야 할 듯합니다.


공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조금만 보내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釜)와 유(庾), 병(秉)은 용량의 단위로 1부는 6말 4되, 1유는 16말, 1병은 16섬(1섬이 10말이니 1병은 160말)입니다. 거듭된 청에 16말을 보내라 했는데 그 50배나 되는 5병(900말), 곧 원헌의 녹봉만큼을 보냈으니 공자에게 청했다는 것은 빈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제나라 사신으로 갈 때 공서화가 좋은 말에 비싼 치장을 하고 갔음을 상기시키며 염유가 불필요한 곳에 헛된 돈을 쓰면서 생색내기에 바쁘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2개의 장은 시점이 다릅니다. 원헌의 사례는 공자 나이 오십이 넘어서의 일이고 염유의 사례는 공자 나이가 일흔 무렵의 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장으로 묶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그럼에도 나란히 언급한 이유는 공금을 씀에 있어 공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원헌처럼 정당한 몫을 사양하는 것은 ‘과공비례(過恭非禮)’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염유의 사례는 공자가 정치의 다섯 가지 미덕 중 첫 번째로 꼽은 ‘베풀되 헤프지 않은 것(惠而不費)’에 위반됩니다. 돈을 쓸 때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절절함이 중요하니 이 또한 중용(中庸)의 지혜가 필요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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