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2장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괜찮다, 꾸밈없이 단출한 사람이다.”
중궁이 말했다. “일상이 정성스럽다가 실행할 때 단출하다면 백성을 대함에 있어 어찌 괜찮지 않겠습니까? 일상도 단출하고, 실행할 때도 단출하다면 그것은 너무 단출한 것 아닐까요?”
공자가 말했다. “염옹의 말이 옳다.”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중궁문자상백자 자왈 가야간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중궁왈 거경이행간 이임기민 불역가호 거간이행간 무내대간호
子曰: “雍之言然.”
자왈 옹지언연
자상백자(子桑伯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논어’에도 한 차례만 등장할 뿐 ‘춘추좌전’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상이란 성을 쓰는 집안의 맏아들로서 대부의 벼슬을 지낸 사람이라는 추정만 가능합니다. 다만 후대에 쓰인 ‘장자’에 자상호(子桑戶)로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인이란 추론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자장 안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풍요한 해석을 낳습니다.
자상호는 맹지반(6편 ‘옹야’ 제15장 참조), 자금장(子琴張)과 더불어 삶과 죽음에 초탈한 자세를 지녔던 노나라 3인방 중 한 명입니다. 맹지반은 제나라와 전쟁에 패배 패주하는 군대의 후방을 끝까지 엄호하고도 “말이 가려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의 무공을 에둘러 감춘 사람입니다. ‘맹자’에서 금장으로 등장하는 자금장은 증석, 목피와 더불어 세속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은 광자(狂者)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입니다. ‘장자’ 대종사 편에서 맹지반과 자금장은 자상호의 빈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바둑을 두며 “무심히 세속 밖에서 노닐며 무위를 업으로 삼아 소요하는 사람들”로 .
‘장자’ 산목 편에는 노나라로 귀국한 공자가 자상호를 찾아가 천하주유 기간 간난신고를 함께 겪었던 문도들이 노나라로 돌아온 뒤 뿔뿔이 흩어지는 이유를 묻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자상호는 천금의 가를 지닌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구해 달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람을 사귈 때 이익(구슬)을 좇는 소인의 자세가 아니라 천륜(아기)을 좇는 군자의 자세를 배우라고 충고합니다. 공자가 이에 깨달음을 얻어 학문을 끊고 책을 버리자 오히려 제자들이 공자를 더욱 따르게 됐다는 노장사상에 입각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할 때 자상백자는 스스로 득의한 바가 있기에 세간의 평가나 세속의 예법에 얽매이지 않은 초탈한 인물입니다. 중궁(염옹)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묻자 공자는 “가(可)하지만 간(簡)히다”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可는 괜찮다, 나쁘지 않다는 뜻입니다. 簡은 본디 대나무를 불에 쬐서 펼쳐 만든 죽간(竹簡)을 뜻합니다. 죽간을 묶어 편집한 편(篇)에 비해 간략한 내용밖에 못 적기에 간략하다, 단출하다, 질박하다는 뜻이 파생했습니다. 여기선 도의 핵심을 꿰긴 했지만 정밀하지 못하고 거칠다는 취지가 담겼습니다.
중궁은 그런 공자의 평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냅니다. 핵심은 거경(居敬)과 행간(行簡)입니다. 거경은 만사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행간은 그를 실행에 옮길 때는 간략한 핵심에만 집중하는 것을 뜻합니다. 평소의 생활태도는 거경하되 일처리를 할 때는 행간함이 백성에겐 도움이 되지만 일처리뿐 아니라 평소 생활태도까지 디테일을 챙기지 않는 거간(居簡)에 머무는 것은 문제라고 부연한 것입니다.
성리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거경에 꽂혔습니다. 불교와 도교에 맞서고자 할 때 종교로서 유교의 가치를 가장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거경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의 지표로 삼은 동시에 학문하는 기본자세도 거경궁리(居敬窮理)라 하여 거경을 앞세웠습니다. 주희에 따르면 궁리는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자세요, 거경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 심신을 긴장되고 순수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궁리가 도를 터득하기 위한 기본자세라면 거경은 덕을 함양하는 기본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도와 덕으로 구성된 군자학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궁리거경이 아니라 거경을 앞세운 거경궁리가 됨으로써 윤리가 도리를 압도하게 된 데 있습니다. 군자학에선 만물의 객관적 원리인 도의 터득이 우선입니다. 덕은 그 도를 인간사회에 적용할 때 잘 맞아떨어지게 돕는 윤활유에 해당합니다. 덕이 없으면 도리의 실현이 불가능해지지만 그렇다고 덕이 도의 위상을 넘어설 순 없습니다.
성리학자였던 퇴계 이황도 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경궁리를 설명하면서 궁리가 머리고 거경이 꼬리의 관계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또 궁리와 거경이 독립된 두 학문을 공부하는 자세라고도 말합니다. 궁리가 도학을 배우는 자세라면 거경은 덕학을 배우는 자세라는 설명이 됩니다. 따라서 도학이 머리요, 덕학을 꼬리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거경궁리라는 표현은 꼬리가 머리 또는 몸통을 휘두르는 아이러니를 초래합니다.
이를 윤리가 도리보다 중요하다는 윤리적 전회로 풀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군자학의 기본토대를 무너뜨린다는 데 있습니다. 군자학은 도와 덕 2개의 기둥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어짊(인)이란 서까래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덕이 강조되면 도가 사라지게 되고 어짊은 덕의 확장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군자학의 목적어에서 도가 실종되고 덕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가 그토록 강조했던 호학의 대상이 객관적 세계원리가 아니라 단순한 도덕교과서로 전락하는 도착(倒着)이 발생합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중궁의 발언 중 ‘이임기민(以臨其民)’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거경행간이 아니라 거간행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칠 때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입세간에 뜻을 둔 군자에겐 문제가 돼도 출세간에 뜻을 둔 방외자에겐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후대의 도가에 속한 사람들은 본디 입세간에 뜻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럴 경우 자상백자, 맹지반, 자금장처럼 방약무인하게 행동하는 거간행간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성리학의 프리즘보다 군자학의 프리즘이 훨씬 더 유연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