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28장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만 돼도 반드시 이 공구정도로 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있을 것이나 나만큼 배우길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충신(忠信)과 호학(好學)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충((忠)은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것이요, 신(信)은 다른 사람과 약속에 충실한 것입니다. 호학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자는 덕을 수양한 결과요, 후자는 도를 터득하기 위해 필요한 입문의 자세입니다.
공자를 성인으로 절대시 한 성리학자들은 공자의 겸손함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겸손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자는 없는 말을 꺼낼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그 자신의 덕은 그리 내세울만한 게 못 되지만 도에 대한 갈증은 누구보다 강렬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주희 같은 성리학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공자에겐 덕보다 도가 더 중요했다는 소리가 됩니다. 군자학이 도와 덕이라는 2개의 기둥 위에 성립하지만 공자 자신은 덕보다 도에 경도됐음을 토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자학은 먼저 객관적 법칙으로서 도를 터득하고 이를 인간사회에 적용함에 있어 덕의 중요성을 추가적으로 깨닫게 되는 학문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입문했다가 그런 세상을 끌고 가기 위한 덕의 가치에 눈뜨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와 덕을 중재하는 어짊(仁)을 발휘하는 법을 고민하는 학문으로 정립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공자가 그토록 안연에게 꽂혔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를 추구하는 호학에 있어 자신에게 필적하면서도 덕행에 있어서는 자신을 압도하는 인물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그 출발점이라면 안연은 그 완성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도덕주의로 무장한 성리학은 당대의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위해 공자의 군자학을 변형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성리학의 문제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군자학의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후반부에 도입되는 덕과 인을 뭉뚱그려 보편법칙(도)으로 강요한 점입니다.
그로 인해 첫째 초심을 망각해 객관적 세계 원리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도-덕-인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심화단계를 무너뜨리고 주관적, 정확히는 상호주관적인 덕 일변도의 사유체계로 재편함으로써 군자학의 왜곡을 낳았습니다. 셋째 군자학은 대다수 사람인 소인 대상의 학문이 아니라 소수정예인 군자를 대상으로 한 학문임에도 세상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보편법칙이란 도착을 초래했습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이 군자학에 대해 저지른 3가지 죄입니다.